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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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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세번째


BY 영광댁 2001-07-22

동안도 잘 지내셨지요?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하늘에서 흘러가는 먹구름의 기세가 급류를 타고 가는
물처럼 빠르군요. 빠르고 기세등등한 먹구름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양동이로 퍼붓듯이 비가 쏟아질래나...

엇그제 해걸음이 지는 시각에 빨래를 걷으러 옥상에 올라가 보았어요.
산이 눈아래 있고 공기가 맑은 탓이려니,
나를 싸고 도는 잠자리떼에 그만 정신이 팔려서
팔안에 걷어진 빨래들을 다시 빨랫줄에 걸어두고
살금살금 잠자리를 잡으려고 한참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네요.
저 잠자리를 잡아 어디에 쓰자고 그러나... 구워먹을 것도 아닌데

언제였더라...흑백사진 같은 시절.
그날은 추석날이였어요.
성묘를 다녀온 후 큰 저수지가 있는 동네로 친구를 따라 산길을
가고 있었거든요.
싸리꽃이 피어 있었고, 수수밭엔 참새떼가 우르르 몰려가 앉았고..
아, 그러면 큰 키의 수수는 휘이청 .. 허리를 구부리고 넘어질듯
넘어질 듯 하였어요.
그렇찮아도 잘 여문 수수목때문에 목이 부러져라 무겁게 매달려 있었는데 참새들이 떼지어 모여들었으니 수수대가 부러질 듯
부러질 듯 위태했어요. 그런데 ... 썩은 동아줄을 타고 하늘에 오르려던 호랑이가 그만 수수밭에 떨어져 호랑이 피로 물들었다는 수수잎파리 앞에 몸통이 붉은 고추 잠자리가 사쁜 내려 앉았어요.
들길이나 산길을 걷다가 으례 만나는 고추 잠자리나
송장 메뚜기나, 여치나 풀무치, 방아깨비들을 잡으려고
신발을 벗어놓고 살금살금 다녔던 길들이 얼마나 많았게요.
발아래는 질경이가 밟히고 , 발밥이 밟히고 ...
정겨운시간들이 늘 밟혀 있었어요.

산길을 걷던 동생과 나는 깊섶에 길게 드러누워 있을지도 모르는
긴 짐승(뱀)을 쫓을 생각으로 긴 막대를 하나씩 들고
발 아래에서 서너 발짝 앞의 풀들을 투덕투덕 치며 걷고 있었는데
수수밭에 내려 앉은 고추잠자리를 보자 마자
동생이 순식간에 막대를 퍽 . 내리쳤어요.
늘 빗나가기만 하는데 어떻게 그게 맞을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참 희한하기도 하지.
그만 잠자리 머리 따로 몸통 따로 딱 갈라져 있더라군요.
겹눈은 여전히 빙글빙글 살아움직이고 날개는 다시 퍼득거리며
방향을 잃은 채 풀섶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참 ... 내...

엇그제 옥상에서 잡으려다 잡으려다 못 잡은 잠자리가
그때 절반 나눠진 잠자리의 후손은 아니였겠지요?
새벽 하늘을 잠자리떼가 날고 있습니다.
비가 타고 올 바람때문에 선잠이 깨었을까.
선잠이 깨었으면 눈이 붉어야 할텐데,
몸통 전체가 다 붉은 채 물들어 휙 휙 날고 있습니다.
하마 절더러 밖으로 나와 나 잡아봐라 ...하는 것 같습니다.

2학년 아이의 국어책에 이런 시가 있었어요.
고추장에 앉은 잠자리를 보고서 고추장 먹지마. 했고
고추장 같은 건 안먹어.. 그랬는데.
안먹기는
온몸이 다 빨개졌는걸? 하는 시를 보고 와 .. 하고 웃었어요.
그래놓고 내동... 고추장독 열어두고 고추장 익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 했어요.

저 잠자리들 계속 왔다갔다 하네요.
(비가 올려면 곤충들이 그렇게 낮게 나는 거라는 아이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새벽 잠을 깨우는 매미떼까지 저리 극성인걸 보면
숲속에서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봐요.
산밭을 들러보고 숲속으로 가 볼까 봐요.
그곳을 가는 길에 허물을 벗은 매미헛집을 만나면
저도 유채이탈이나 해볼까.
오늘 하루쯤 날개가 달린 곤충이 되어 저 우중을
날아다녀 볼까.싶네요.
그럴 수 있다면 좀 좋겠어요.
그만 산밭에 다녀올까 봐요.
노랗게 꽃이 핀 키 큰 해바라기가 어제 쏟아진 비 때문에 넘어져 있을지도 몰라요.
가뭄에 풍년을 이루었었다는 파씨를 다듬어 놓으셨다네요.
A동 형님께서요.
파씨를 심어두고 숲속으로 가 볼까 해요.
분명 신비한 일이 일어나고 말지도 몰라요.
그쵸?

즐거운 일요일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