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에 봉선화물을 들이세요.’
서울시가 운영하는 수목학습원이 여름방학을 맞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대표적인 것은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는 체험. 경기 사릉 수목학습원에 피어 있는 3000여 포기의 봉선화가 원재료다.
이외에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향토작물과 야생화를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사릉 및 갈매 수목학습원에서 열린다.
신청기간은 20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사전에 전화(사릉 031-573-8120, 갈매 031-571-2636)나 인터넷(www.parks.seoul.kr)으로 예약 신청해야 한다. 비용은 무료.
개인이나 가족, 중학생 이하의 어린이 단체(50명 안팎)면 신청할 수 있다. 운영시간은 기간 중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사릉 수목학습원으로 가려면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출발하는 7-5, 705번 일반버스를 타고 사릉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02-318-4356∼7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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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친구들이 놀러왔다. 친구들은 이제 막 돌을 넘긴 달이를 보며... 달이가 이제 좀 더 크면 화장대 위로 올라가 온갖 화장품들의 뚜껑을 열어 바르고 난리를 칠 것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갔다...
어린 조카들이 놀러와서 자기들의 화장품에 손을 대어.. 그네들이 가고나면 며칠을 닦아도 닦아도 방바닥에 남아있는 영양 크림에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어린날을 떠올려보면.. 엄마가 얼굴에 찍어바를 화장품 몇 개도 구색 맞춰 갖추지 못하고 시종일관 맨얼굴로 다니셨던지라... 찍어바를 것이 없기도 하였지만 나는 참으로 화장품에는 별 취미가 없는 다소 건조한 성격의 소녀였던 것 같다...
그러던 내게... 이모가 손톱에다가 발그라니 봉숭아 물을 들여준 것은 아마도 국민학교 2학년때의 일이 아닌가 싶다..
그 해는... 우리 가족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오빠가 아팠고.. 오빠는 힘든 수술을 두 차례나 받고.. 재발을 거듭하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내가 손톱에 발그라니.. 봉숭아물을 들이고.. 봉숭아잎사귀로 온 손톱을 칭칭매고 있던 그 밤에도 오빠는 오랜만에 퇴원해서 돌아온 집에서 열이나고 몹시 아팠나보다.. 나는.. 그렇게 응급실로 실려가는 오빠를 따라.. 응급실로 갔었다...
응급실 침대에 누인 오빠를 두고... 철없이 응급실을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한 젊은 의사 선생님이...
"넌 손이 왜 그래?"
하고 놀라며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제서야.. 내 손톱을 내려다보았고.. 어린 마음에도 오빠가 아픈 마당에... 엄마랑 아빠가 나를 돌볼 여력이 없는 이 부산한 마당에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히 느껴져 이내 그 잎사귀들을 칭칭 동여매고 있던 흰 실들을 다 풀어 던져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한번도.. 봉숭아 물을 들여보지 못했다.
그렇게 사춘기를 맞고...
아이들은.. 봉숭아 물을 들이고.. 이 봉숭아 꽃물이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아리따운 소망을 가슴에 품곤했으나.. 나는 길가에 핀 봉숭아꽃잎들 몇 개를 하교길에 따와서 연필 꽁무니로 콩콩 찧어 새끼 손톱에 대어보며.. 발그라니 솟아나는 그 꽃물에 기뻐하긴 하였으나... 정식으로 물들이지는 못하였다...
나는... 몇 해전 아줌마가 되었다...
아줌마가 되고나니 놀랍게도 처녀때 현실에 치여 잊혀졌던 감상들이 곱절로 솟아나와 더 주책맞고 더 센티멘탈한 여자가 된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별 것 아닌 노래가사에도 콧등이 시큰해오고...
지나가는 어린 아이만 보아도 내 아이 생각에 연유를 알수없는 짙은 그리움이 동반된 눈물이 솟는다...
유난했던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 봉숭아 꽃잎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민다...봉숭아 꽃잎을 보고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애잔한 감정이 솟는 것을 애써 숨겼다.
올해가 지나고.. 다음해 이맘때가 되어 다시 봉숭아 꽃잎의 인사를 받을즈음에는 나도 시골 장터에 나가 백반을 사다가 내 사랑스러운 딸아이 달이의 어린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그러면 내 딸 달이는 그 봉숭아 꽃물속에 상큼한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며 감성이 풍부한 소녀로 자라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