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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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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집이 넓어 보이는 이유


BY 쟈스민 2001-07-20

방학을 하자 마자 할머니네로 달려간 아이들 덕에

모처럼의 자유를 얻은 듯 처음엔 약간의 홀가분함이 있었다.

늘 엄마의 퇴근길을 반겨주던 아이들이 없으니 집안이 마치 절간 같

다.

그리고 오늘따라 집은 왜 그리도 휑하니 넓어 보이기만 한지....

아이들의 주체할 수 없는 팔팔한 기운이 없으니 한 여름이건만

집이 썰렁하게 느껴진다.

음악을 틀어 봐도 그렇고, TV도 심드렁하다.

책을 볼까?, 영화를 볼까?

아. 이 자유스러움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보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진 못할 것 같은 예감

이 든다.

그러던차에 큰 시누이의 전화를 받는다.

집근처의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오게 되는 시누이는 오늘 저녁 그 집

에 니스칠을 한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저녁을 좀 준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퇴근해서 한번도 엉

덩이 부칠 시간 없이 분주히 움직인 덕분에 조촐하지만 내 나름대로

는 정성을 들인 밥상을 차리게 되었다.

언니가 없이 늘 큰언니 노릇을 하던 나는 그 시누이가 꼭 언니처럼 느

껴질때가 많다.

워낙 자상한 시누이라 이것 저것 집안일은 늘 상의하곤 한다.

그래,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시누이에게 나도 그리 대하면 될 테지...

하는 생각으로 노릇한 호박 부침개를 부치고, 육개장을 끓이고, 꽈리

고추는 밀가루 묻혀 살짝 쪄 양념장에 버무리고...

행여 늦을새라 미리 차려 놓은 밥상에 김치가 미지근해져서 다시 꺼내

며 정성을 들여 본다.

공구상가를 운영하는 시누이 내외는 늘 늦게 일을 마치는 관계로 늦

은 저녁을 들곤 한다.

저녁을 먹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한다.

주말에는 가구를 사러 다녀야 한다고 함께 가자고 하신다.

결혼하면서 시부모님께서 사 주신 집에서 20년을 사신 그 분이 처음으

로 아파트에 이사를 하신다.

아파트에 살아본 경험이 없다 하시며, 혼자는 결정이 안 되신다 하시

며 집보러 함께 가자고 올케에게 청을 하시던 시누이...

장농 사는데도 이 올케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가보다.

남편은 옆에서 "누나가 그래도 당신 안목있는 건 아는 가 보다"

그런 말로 나를 부추긴다.

"형님 새 살림 장만하시어 새 집에 이사가시면 갓 시집온 새댁의 마음

으로 살게 될려나요?"

이런 우스개 소리를 하며 밤이 깊어 가고, 우리가 처음 이 집을 장만

하여 이사 하던때가 떠올려졌다.

졸리다는 아이를 업고서 이곳 저곳 가구 매장을 다니며 하나 둘 새 식

구를 맞는 기분으로 살림을 고르는 재미는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물건이 새것이라 그런 점 보다도 앞으로 정 붙이고 살 새 식구인

터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간의 고단한 노력 끝에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시누이에게 진심어

린 축하를 해 주고 싶고, 아주 근사한 가구들을 만나는 데 나도 일조

를 하려 한다.

그리고 이웃 사촌이 되어 자주 들락거리며 언제나 수저만 놓고 스스럼

없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누, 올케사이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해 본

다. 빈대떡 부치면 옆 동네 아파트로 떡하니 한 장 날리면서.....

모두들 돌아가고, 남편과 나만 남은 저녁....

오늘따라 넓지도 않는 집이 왜 그리도 넓어 보이는지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애써 일군 내 삶의 보금자리가 더 없이 소중해서 그런 건가?

아리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