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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 <물빛1 - 마종기>


BY 청안애어 2002-12-26

시와 숭늉을 좋아하시는 여러분! 즐거운 성탄절 보내고 계시죠?
메리 크리스마스~~

지난 일년동안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여려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번 칼럼은 성탄절을 기다리며 찬웅이와 나눈 얘기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여섯 살인 찬웅이는 12월에 접어들면서 하루하루 크리스마스를 손꼽으며
기다렸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첫 마디가 "엄마, 이제 크리스마스 며칠 남았어요?" 하며
인사를 했지요.
며칠 째 심한 열감기에 힘들텐데도 크리스마스가 뭔지... 아이는 평소보다
오히려 기분이 업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 시장 앞에 있는 우체국을 지나치며 아이가 말했습니다.

찬웅: 엄마, 저는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쓰고 싶어요.
엄마: 그래? 산타할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겠다.
찬웅: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계시죠?
엄마: 그럼.
찬웅: 그런데 걱정이 있어요.
엄마: 뭔데?
찬웅: 제가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잖아요. 그러면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전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전해줘요?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새처럼 날지도 못하는데...
엄마: 그렇구나. 그럼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지 말고 네 머리맡에
놔두면 어떨까?
찬웅: 햐~~ 좋아요,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우리 엄만 천재야!
찬웅: 엄마, 산타할아버지 전화번호가 어떻게 돼요?
엄마: 글쎄... 산타할아버지는 전화가 없을거야.
찬웅: 아니에요. 전화 있어요.
엄마: 정말?
찬웅: 그럼요. 저는 전화번호 알아요. 그런데, 전화번호 국은 아는데
번호를 몰라요.
엄마: 그래? 그럼 국은 몇 번인데?
찬웅: 산타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1000국(천국)이죠.
엄마: 하하하. 그럼 1000국에 뒷 번호는?
찬웅: 그건 제가 엄마께 물어봤잖아요. 우린 엄만 정말 못 말려.

엄마: 찬웅아, 넌 아빠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안 해 줄거니?
찬웅: 좋아요, 해 줄게요. 나 돈 많잖아요.
엄마: 그래, 그럼 네 용돈에서 아빠 엄마 선물 사 주는거다.
찬웅: 엄마는 무슨 선물 받고 싶어요?
엄마: 나, 찬웅이가 주는 거라면 뭐든 다 좋지.
찬웅: 아빠한테는 뭘 선물할까요?
엄마: 뭐가 좋을까?
찬웅: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거로 해야 되지요?
엄마: 그러면 좋겠지.
찬웅: 그럼, 딱 좋은 게 있어요.
엄마: 뭔데?
찬웅: 담배요.


어젯밤 잠자리에서 찬웅이가 걱정스레 아빠에게 물어봅니다.

찬웅: 아빠, 산타할아버지는 내가 잠든 사이에 다녀가시죠?
아빠: 그럼
찬웅: 그런데 집으로 어떻게 들어오세요? 문도 꼭꼭 잠그는데...
아빠: 그야... 굴뚝으로 들어오시지.
찬웅: 에이, 아파트에는 굴뚝이 없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들어오세요?
아빠: 그야... 다 들어오는 수가 있지.
찬웅: 어디로요? 어디로 오시는데요?
아빠: 음~~ 그건 말이다...아파트엔 굴뚝이 없으니까...
환기통으로 들어오시지^^;
찬웅: 으악! 환기통이라구요? ◎.◎


밤새 열이 39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던 찬웅이가 잠결에 끙끙 앓았습니다.

엄마: 찬웅아, 어디가 제일 아퍼?
찬웅: 아니에요. 그냥 꿈을 꿨어요. 엄마 걱정하지말고 주무세요.
그러면서 날 껴안아 등을 토닥여주더니,
찬웅: 엄마, 지금 아침이에요?
엄마: 아니, 아직 새벽이야. 찬웅이 열이 높으니까 해열제 먹고 조금만
더 자자.
찬웅: 네. 그런데, 산타할아버지 다녀가셨어요?
엄마: 아니.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면 다녀가실거야.

아침 여섯시에 눈을 뜬 아이,

찬웅: 엄마, 산타할아버지 다녀가셨어요?
엄마: 글쎄... 엄마 생각엔 다녀가신 것 같은데 네가 거실에 나가볼래?
찬웅: 선물은 어디에 있는데요?
엄마: 아마 크리스마스트리에 있을거야. 네가 찾아봐.

트리에서 선물을 발견한 찬웅이가 소리칩니다.

찬웅: 야~ 선물이다. 휴~~ 난 산타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오시다가
내 선물 떨어뜨린 줄 알고 걱정했네.



며칠 전 밤하늘을 올려보던 찬웅이 달무리진 달을 쳐다보며,

찬웅: 엄마, 달이 이상해요?
엄마: 응. 달에 구름 같은 것이 테두리를 하고 있어서 그래. 저런 걸
달무리라고 한단다.
찬웅: 휴, 다행이다. 난 달이 눈병난 줄 알았어요.


언젠가 테 두른 토성을 보고 '토성이 훌라우프한다'고 기발하게 말하던
상헌이를 찬웅이가 교육 시킵니다.

찬웅: 상헌아, 우주에서는 블랙홀이 제일 무서워.
상헌: 왜?
찬웅: 전부다 집어삼키거든.
상헌: 이 사탕도 삼켜버려?
찬웅: 그래.
상헌: 그러면...나도 삼켜버려?
찬웅: 그래. 블랙홀은 뭐든 다 삼킨다니까... 으~~ 형아 응가 마렵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응가를 다 본 찬웅이가 소리칩니다.

찬웅: 상헌아, 이리 와 바.
상헌: 왜?
찬웅: 여기와 봐. 보여줄게 있어.
상헌: 뭔데?

찬웅이가 변기에서 내려와서는 엉덩이도 닦지 않은 채 물을 내리면서,

찬웅: 상헌아, 여기에 물 내려가는 것 봐. 형아 응가도 다 빨려 내려가지...
이게 바로 블랙홀이야.

모른 척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던 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와이? 머땜시?
울 아들의 말이 너무나 기발하잖아여~~~ ^^*


이브 저녁, 온 가족이 모여앉아 성탄카드를 만들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과 저에게,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저는 산타할아버지를
빙자하여 보냈기에 생략했구요.^^

찬웅이가 아빠에게 보낸 카드가 걸작이라서 맞춤법 틀린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아빠, 병드러서 미안해요.
내일은 크리스마스죠?
아빠도 병 걸렷죠.
아빠는 이제 오락 시러하죠.
아빠 물고기 먹이 마니 주죠.
사랑해요.

찬웅이 눈에 비친 아빠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서 남편과 저는
한바탕 웃었답니다.


2002. 12. 25. 淸顔愛語


물 빛 1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 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져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詩 마종기


<http://column.daum.net/soongnyung>와 동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