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숨은 애인이나 영원한 첩이 되어 드릴까요?
말이 통하는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특별히 그녀가 남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거나, 유달리 섹시하다거나 하지
않아도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잘 웃어주고 재치있는 답변이
뒤를 이어준다면 그녀의 외모같은 것은 별로 불평할 일도 아
니다. 아무래도 첫인상 따위보다는 의상에 대한 코드나 엑세
서리 같은 것으로 이야기가 통할 만한 사람이다 아니다 라는
것을 이젠 어림 짐작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신통할 정
도로 느낌이 정확해진것이다. 그러므로 신체의 일부에 불과한
여인의 얼굴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지 않게 된 것은 진정
한 발전이다. 어림짐작속의 몇 가지 Code가 맞고 주된 관심사
인 인생이라든가, 책이라든가, 음악이라든가, 사랑 따위의 이
야기가 그런대로 초점이 맞는다면 적어도 술친구 하나는 생긴
것이다. 그게 어딘가? 수 많은 군중속에서 고독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미소가 귀여운
술친구가 생긴 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것인가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런 친구는 그간 몰라서 속을 태우던 또 다
른 행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비밀에 쌓여있던 건너편
행성의 입장을 제 3자의 나레이션으로 담담히 3인칭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어쩌다가 여인과 하루밤을 지내게 되면, 대개의 남자들은 이
젠 내 여자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그녀는 내게 마음과 몸을
열었어! 그러므로 어느정도 애인과 같은 행세를 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고속으로 돌아가는 이즈음의 시대에서는 술자
리나 기타 의도하지 않은 세련된 기회로 여인의 몸의 열었다
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사랑의 완성이며, 편안한 관계가
된 것은 아니다. 여인은 이제 이걸 어쩌나 하고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여하튼 한 15% 정도는, 내
남자인가? 하는 긴가민가 하는 심정으로 만남을 시작하게 되
는 것이다. 일단은 쉽지 않은 관계가 되었으므로 노력은 해보
는 것이다. 한 여인의 주인이 된듯한 뿌듯한 기분은 여자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자신의 앞에서 부드럽게
미소 짓는 여인의 정신까지도 완전하게 점령하고 있다고 믿어
버리고 잡은 고기 미끼 주냐? 하는 어리석은 행동도 하게 되
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여인은 계속 고민한다.
만남이 계속되고 함께 밤을 지새는 일도 많아지므로 남자는
점점 더 확실하게 내 여자임을 매번 확인 하려고 한다. 물론
대부분 나는 당신의 여자지요. 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때
로 불유쾌한 대화도 오고가고 조금씩 틈이 보이기도 하는 것
이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여인은 자신과 두사람의 관계를 돌
아보고 점검하고 계산한다. 그 평가가 늘 49점에서 51점 사이
를 오가는 동안에도 남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언제나
절벽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짐작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
론 여인도 의도하는 바는 없다. 다만 그렇게 행동하도록 BIOS
가 입력되어 있는 것이다. 틀림없이 본능이라는 것이다.
만남이 길어지고 추억도 쌓여간다. 하지만 끝만 붙어 있는 낙
엽의 관계는 그 한쪽 당사자인 남자의 생각 이외엔 절대로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어쩌면 이별뒤의 공백과 밀려드는 외로움,
또 다른 남자를 만나면 처음부터 이런저런 과정을 되풀이 할
것이 정말 너무나 지겨워서 그런대로인 만남을 계속하고 있을
수도 있다. 두 사람간의 관계는 깊이 있게 들여다 본다면 누
구나 알 수 있는, 이별의 직전이지만 아무튼 남자는 모른다.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어제 저녁 함께 밤을 새우고 미소
를 지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여인이 오늘 이제 그만 만나
자고 한다면 어떤 남자라도 당황할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없
는 것이다. 헤어질 만한 정당한 사유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일단 배신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새로운 남자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수첩에 있는, 때
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던 남자 친구가 새로운 연인으로
재 등장하고 그러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아닌 경우가 틀
림없는 것이다. 수 많은 시간을 조금씩, 그리고 수만가지 이
유가 낙수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듯 생긴 이유들이라서 어느것
을 집어 설명을 해도 남자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라고 더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연히 목숨도 걸어야 할 중대
하고 근엄한 사랑이 끝나는 엄청난 순간에, 그 이유라는 것들
이 너무나 부실하므로 핑계에 불과 하다고, 말도 안되는 소
리! 라고 길길이 화를 낸다. 보다 확실하고 명쾌하며 이유가
분명한 그런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지만 절대로 알 수 없을 것
이다. 때로는 여인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수만가지
일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하자면 사귀어 온 기간보다도 여덟
배쯤 더 많은 시간을 설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간 빛의 속
도로 머리속을 돌아다닌 생각들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
는가? 그러니까 이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이별 뒤에
남겨진 그것도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처럼 사랑을 알게된 여인에게 사랑을
참으라고 말하는 것은 형벌이나 다름없다고 나도 생각한다.
여자에게도 몸이 있고 성욕이 있고, 그리움은 가슴 타는 두려
움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미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여자
예요. 라고 부드러운 마취제를 지속적으로 남자에게 주입한
다. 남자가 확실한 것을 원하고 두사람간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고 보다 명확한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남자들 보다도 더
잘안다. 그녀들은 미래를 고려하고 꿈꾸고 신중하기에 자신의
2세를 낳을 보다 나은 둥지를 원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하
여 남자와 여자가 밤을 함께 하고 나면 남자는 사랑의 완성이
고 이제부터 주욱 잔디가 깔린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는 착
각에 빠지고, 여자는 이제부터 어떻게 두사람의 관계를 잘 이
끌어서 2세를 잘 낳아 기를까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민하
게 된다. 결혼 적령기의 여인들이 어린 아기를 보고 뭔가에
홀린듯한 표정을 지으며 참 예쁘지요? 나도 저런 아기를 낳고
싶어요 라고 꿈꾸듯 이야기 하는 것을 보지 못한 남자가 있을
까? 남자들은 나의 대를 이어주려는 가보다 하고 내심 흐믓해
하지만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여인들은 결국 자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것이지, 역설
적일지는 몰라도 누구의 대를 이어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
은 아니다. 해서 나이먹은 여인들은 핏줄에 대한 이야기를 자
주 입에 올린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여인들이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공식적인 변론 같은 것은 아닐까? 지극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당신을 닮은 아이를 만들어 주고 싶어
요. 너무나 많이...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결국 존재하지 않았다. 그 역시 본능이기 때문에 자신
이 이기적이라든가 남자에게 상처를 준다든가 그런 것은 잘
모르는 것이다. 몇 명과 사귀고 몇 명과 이별하였는 지는 모
르지만 결혼식장에서 여인은 울다가도 꼭 한번은 우아하게 미
소를 짓는다. 그녀들의 길고 긴 작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
를 짓는 성공의 순간인 것이다. 비록 언제나 데모 버전에서
마무리가 되는 성급하고 부족한 판단일지는 모르지만, 그 또
래의 남자들도 그녀들 보다 더 나을 것도 없으므로 그들은 피
차 서로 손해날 일이 없다고 믿어지는 좋은 거래를 한 것이
다. 어쩌면 데모 버젼의 상태에서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결혼
을 하였으나 연애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남자의 사소한 결함
들, 대부분 남자들은 결함이라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결함
때문에, 그 남자의 여인은 늘 반란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른
다. 어쩌면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여인들을
고통과 불면과 망설임의 시간속에 몰아 넣고 있는 지도 모른
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여인의 잔소리에 주목하여야 한다.
제가 당신의 애인이나 영원한 첩이 되어 주면 어때요?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다 젊은 시절의 이야기 였고, 나는
내심 흐믓하였다. 어쨌든 그런대로 매력이 있다는 반증이 아
닐까 하고 생각 하였던 것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 라고
일축하였다. 결혼도 안하고 첩부터 챙긴다고? 그러나 나는 순
진하였다. 그녀들에겐 사랑할 대상과 구체적인 몸이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녀들의 2세를 만들어줄 구체
적인 미래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요즘과는 다른 조금 구식
인 시대였기 때문에 연하의 남자인 나를, 또는 지나치게 연상
인 나를, 그녀들의 주변과 무엇보다도 완고한 아버지와 쓰러
질 어머니에게 설득할 자신이 었는 것이었다. 착한 딸로 키워
진 그녀들에겐 그럴 용기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 남자
가 어디 나 하나 뿐인가? 그러니까 결국 구체적인 계획을 가
지고 당신과 결혼을 약속하며 사귈 수는 없어요. 라는 이야기
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을 남자인 나는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보다 근본적인 사랑에 근접한 것 같은 제안 일지도
모른다. 필요에 의한 관계라면 불편함을 가지고 매일 만나야
한다던가, 사랑이 점점 뜨뜻미지근 해지며 서로에게 이것 저
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는 족쇄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좋
은 인연이 두 번 다시 바라다 보지도 못할 안 만났으니만 못
한 관계가 될 수도 있으므로,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 그렇게
제안 한것이라고 믿고도 싶다. 하지만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시절 이야기 한 꼭지가 어디 얼마나 지속 되었겠는가? 나
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어떤 여인이 독신을 운운하며 남자의 곁에 영원히 머물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영원이 당신의 아내가 될 수는 없어요! 라는
말일 수도 있다. 결국 남주긴 아깝고 계속 가지고 있기도 힘
든 뜨거운 감자에 불과 하였던 것이다. 비록 내가 강원도 출
신이긴 하여도 그런식의 감자 취급은 그 당시 생각하기에도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당분간이라는 말이 빠진 것이고 그것
은 그녀들의 본능이었다. 당분간만 당신의 애인이 되어 줄게
요. 라고 했더라면 피 끓는 단순한 나에게 뺨이라도 제대로
맞지 않았겠는가? 이제는 조금 나이가 들어, 그래 그녀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나름대로 얼마만한 고민이 있었기에 그
렇게 묘한 질문을 한것일까? 얼마만한 밤을 몇 양동이의 눈물
을 흘렸을 것인가? 그것은 분명하게 도덕이니 정절이니 하는
따위를 넘어선 어쩔 수도 없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
이다. 어쩌면 애매한 태도를 취한 쪽은 보다, 확실한 단순함
을 보여주지 않은 나 일지도 모르고 그녀들의 마음을 좀더 부
드럽게 돌려 보내지 못한 나의 잘못일 수도 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을 쫏
아 현실과 조건을 버린 여자와, 현실과 조건을 쫏아 사랑을
버린 여자의 수를 생각하여 보면 알일이다. 그냥 주위를 힐끗
스쳐 돌아 보기만 해도 누구나 다 알일이다. 물론 이것은 인
생이므로 알다가도 모를 일도 분명히 있겠지만...
폭풍우가 치던 지독한 밤에
세 그루의 소나무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