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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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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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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 이야기 16. (어리버리한 여자)


BY 손풍금 2002-12-24

며칠전 갑자기 찾아온 강추위에 정신을 차릴수 없이 추워 얼굴과 온몸이 다 맹맹하였다.
다음날 감기기운이 느껴져 옷을 몇겹이나 껴입고 나섰다.
얼마나 옷을 두껍게 입었느냐하면 길가던 사람하고 슬쩍 부딪혀 넘어진다면
버둥버둥거리며 일어나질 못할정도로 비둔하고 미련하게 눈사람처럼 뚱뚱하게 옷을 입었는데 (히히. 안 얼어 죽을라꼬)
그도 소용없어 한번걸려든 감기는 장터에 나가 앉아있는데 약기운에 취해 옷속으로 얼굴을 집어놓고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내 옆자리에 처음뵙는 아주머니께서 나와 콩나물을 다듬고 계셨는데 손이 시려울것 같아 아주머니 앞에 손난로를 놔드렸다.

'그냥 팔지 손시려운데 언제 껍질을 다 다듬으세요. 손끝이 다 얼었네요.
어.콩나물도 다 얼었잖아요'하는 내말에

'다듬기 귀찮다고 안다듬어 놓으면 안사가요. 다듬어 놓아야지 팔리지,
요새 누가 꾸물럭 거리면서 일하려고 하나 내몸 편하게 최고지..'하시더니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내 말이유.
열아홉에 시집와서 스물여섯에 혼자가 되었는데 뱃속에 든 아이까지 세명이나 되는 어린 아이들을 쳐다 보고 있으니 오기가 생기며 산사람은 살아야되겠지 싶더라구, 그래서 우유배달을 시작했는데 손수레에 우유를 싣고 배달을 하면서 눈이오는 날이면 언덕길에서 넘어져 데굴데굴 굴러 내려와 다치기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겨울만 되면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눈온길이 무서워서 엉금엉금 기어다니잖아요.
서방 잡아먹은년이라고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 때문에 집에서 있지도 못하고 일을 다녔는데 누구 신세도 안지려고 세아이 한방에 넣어 밖에서 문잠구어 놓고 점심때면 불이나케 뛰어와 점심밥주고 다시가고
참, 그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러 낼모레면 환갑이니 ..'

'그럼, 자제분은 모두 어른이 되었겠네요'하는 내말에
아주머니는
'그럼요, 큰아들은 결혼했고 둘째아들은 직장다니고 세째놈은 지금 학생이고..'
내 우리 자식자랑좀 할까요?
큰아들은 세관공무원이고 큰며느리는 스튜어디스 이고
둘째놈은 고등학교 선생이고 막내놈은 서울의대 다니는데 지금 인턴과정 밟고 있다오.
내가 한복바느질해서 세아들 다 키웠는데 하루종일 방안에서 바느질만 하고 있으니 눈이 침침해져서 이젠 이렇게 나와서 일다니는거요.'

'고생 많이 하셨네요.이젠 그만 쉬시지 그러세요.'

'우리 애들도 못하게 하느라 걱정이 대단한데 집에서 놀면 뭐해요.
일하는게 몸에 베어서 쉬니까 아픈곳이 더 많은걸..'하신다.

'그렇게 혼자 힘들게 일하시고 이제 자제분 휼륭하게 잘 키워내셨다 생각하니 지난날들에 대해 서럽거나 외롭지 않으세요. 아주머니를 위해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안해보셨어요?'하는 내말에
아주머니께서는 한심한듯 나를 바라보더니
'그런소리 하지마슈. 외로울새가 어디있슈? 지금도 정신없는걸.
나를 위해 살기는 어찌 감히..나는 나를 버리고 자식위해 살은 여자요. 나를 돌본다는것은 사치요. 허영이지, 어찌 어머니가 되어가지고 서는 그런 생각을 할수 있어요? 벌받을려고..'
(얼마나 단호하게 말씀하시는지 야단맞는것 같았다.)

'네...'
아주머니께서 부지런히 콩나물 껍질을 다듬고 있는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메세지가 들어온다.
뉴스와 몇가지 정보를 써비스 받아 보고 있는데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나를 옆눈질로 바라 보더니 아주머니께서
'우리 아들들이 핸드폰을 두번이나 해줬는데 내 대리점에가서 반환시켰어요.
저희들은 내 목소리들으려 한다지만 기본요금이 여간 비싸야지 , 괜한 돈 내버려가면서. 쓸데없이'하시더니
'내 아이들한테도 그랬수, 길에 나서서 일하면서 핸드폰 들고 다니면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고..두번다시 핸드폰 가지고 오지말라고'

(허거덕~!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고? 나는 보고 있던 뉴스를 읽다말고 민망해서 핸드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무셔... )
쪼그려 앉아 있다 옆으로 비껴서는데 옷을 많이 입어 넘어졌다.
내 흔들림과 가벼운 외침에도 아주머니는 미동도 않다가

'난로불 꺼요. 얼마나 버는지는 몰라도 추운거 찾으면서 가스 사서 난로 피우고 뭐가 남는게 있다고
겨울이니까 추운거 당연한거고 그만치 옷입었으면 하나도 안춥것구먼..
길거리에 나설정도면 정신머리는 독하것구먼 하는짓이 그리 약해보여서 어디 쓰것누..'
하며 내가 아주머니 앞에 놓아드린 손난로를 민다.

난로를 꺼고 일어섰다.
해는 떨어져 추위가 더 기승을 부리는데 몸은 감기기운으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혹여 약기운에 졸음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 자판기 커피를 빼들고 아주머니 드릴 율무차 한잔을 뽑아서 건네 드리니
'나는 이렇게 사치한 음식 안먹어요. 그렇게 해서 돈은 언제 모으누..푼돈이 큰돈되는거 모르슈'하고 혀를 쯧쯧..하고 찬다.
(하이고 ,, 뭔가 엄청 내가 잘못된 사람같아진다.)
집으로 돌아가려 짐을 싸니
'벌써 가유?' 하며 쳐다본다.

'네.'

'해가 아직 중천에 걸렸는데 , 반나절 밖에 안지났는데..
이왕 나온거 어둑해질때까지 있어야지. 춥다고 집에가면 언제 돈버누..
아예 나오질 말지..'

*&%$#@ 뜨아...
아이고. 착한 콩나물 아줌마 무서워서 빨리가야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