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사람도 변하는가.
이젠 그것도 꽤 된 것 같다.
마광수교수가 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읽은 것이.
그 책을 읽고 '허, 참......' 하며 혼자 씁쓰레
웃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새삼스레이 그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다.
생긴 것도 후질그레해보이는데다 깡마르기까지 한,
그 교수는 그때 웬지 성도착자(?)같은 께름찍함을
갖게 했었는데......
그는 또한 특이(?)한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 아내와도
결국 이혼하고, 나중에는 필화에도 휘말려 불미스런
사건까지 겪었던, 불운의 학자기도 하다.
어쨋든 각설하고.
그는 유난히도 손톱이 긴 여자에게 집착하는, 그걸
뭐라고 하던데, 뭐 하여튼 독특한 취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야하다는 것은 외모상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
자신은 바로 그런 야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다분히
통속적인 냄새가 짙은 그 책.
내가 40을 바라보는 요즘, 손톱을 제대로 길러보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다.
손톱이 자라기가 무섭게 잘라내, 어쩔 땐 손톱앓이
까지하면서도 떨쳐낼 수 없었던 집요한 내 습관.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나도 손톱을 기른다.
길어진 손톱 선을 보면 또 다시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까봐, 아예 진한 메니큐어를 바르면서까지
손톱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새삼 느끼게 되었다.
긴 손톱이 주는 야릇한 매력을.
물론 내가 내 자신에게서 느낀 새로움이랄까,
어쩌면 묘한 흥분같은 것이기도 하다.
손을 내 쪽으로 구부려서도 쳐다보고, 때로는
손가락을 쫘악 펴서도 바라본다.
또 가끔은 길어진 손톱을 하나하나 유심히
쳐다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또 하나의 변화.
나는 요즘 내 손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남의 손도
아주 유심히 바라본다.
손을 움직이는 동작을 새삼스레이 신기한 듯, 어쩔 땐
홀린 듯 쳐다보기도 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놀림은 그래서 더 더욱
재미있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광수 교수.
이제 나도 조금은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얘, 그 허우대를 해가지고 야한 것 받쳐쌓는 걸 보니,
정말 기가 막히는구나.
정작 양귀비가 눈 앞에 있어도 힘(?) 한 번 제대로
못 쓸 것 같은 위인이, 그래도 눈은 있어가지고 야한
걸 밝히나보구나.
하긴, 남정네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여."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읽었던, 내가 아는
어떤 할머니는 그런 혹평(?)을 하며 안됐다는 듯
연신 혀를 끌끌 찼었다.
하지만 나는 마광수 교수의 순수함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뭐라고 꼭 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 자신부터
어느 순간 갑자기 느껴진 새로운 '느낌'은, 바로
섹시함의 근원이 아닌가 싶은.. 신비로움 때문이다.
손톱.
그것이 뭐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손톱을 기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특히 나에게는- 쉽지 않았었다.
손톱은 단순히 그냥 길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의외로 손톱은 생각보다 약해서, 곧잘 부러지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 모든 것을 다 견뎌내고, 아름답게 손톱을
길러내는 일이, 또 그 과정이 몹시도 긴장되고
조바심이 난다는 건,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섹시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섹시함의 기본을 '긴장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흔히 섹시함의 대표로 꼽히는 마릴린 몬로의 몽롱한
듯한 권태로움도, 어쩌면 고도로 연출된 긴장감의
색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다.
섹시함이란 바로 느끼는 사람의, 결국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는 바로 '그 무엇'인 것이다.
몇 가지의 메니큐어를 새로 더 사고, 또 손톱에
메니큐어를 칠한 뒤, 입술 루즈색까지도
그 메니큐어색에 맞춰보는 그 재미가,
나에게는 의외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마광수 교수는 아마도 내가 느낀 이런 기분을
남자의 입장에서 쓰고 싶었을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어쩌면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상대적이고, 또한 호환적인
것이 아닐까.
어쨋든 나는 요즘은 손톱을 길러보는
재미에 쏙 빠져있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