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으로 떠난 누이
내 나이 다섯살 되던 해 어머니는 누이동생을 낳으셨다. 어머니가 동생을 낳으시던 날 밤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몸짓은 분주해지고 방에는 더운물이 큰 양푼에 담겨 들어왔다. 단칸방에서 돌아 누우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웅크린채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어머니가 얼마나 아프면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밤늦게까지 저러시나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쯤 지나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동생이 태어난 것을 알았다.
그렇게 여동생 화영이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누이는 눈이 동그랗고 참으로 예뻤다. 앙증맞게 한쪽 눈을 찌푸리는 버릇이 있던 누이는 늘 다소곳 하고 얌전했다. 나는 바로 아래 동생과 놀곤 했기때문에 누이는 늘 외톨이였다. 나와 동생이 산으로 개울로 뛰어 다닐때 누이는 집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후 대전으로 이사를 와서 중학교에 입학한 누이는 먼 거리를 걸어서 학교엘 다녀야 했다. 손발이 유난히 차가운 누이를 위해 어머니는 털장갑과 쉐터를 떠주셨지만 겨울이 되면 누이는 언제나 추위에 떨곤 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던 누이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병이 생겼다. 나는 그 무렵 학교를 휴학하고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누이의 병세가 조금씩 악화될 무렵 나는 입대하여 최전방에서 근무를 했고 간간히 누이로부터 오는 편지를 통하여 그녀의 건강상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누이는 장에 이상이 있었다. 먹어도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였다. 배는 불러 오는데 변을 보지 못하였다. 괴로워 하는 누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식구들은 병에 좋다는 약이라면 수소문하여 어떻게 해서든 구해오곤 했지만 누이의 병세는 회복되지 않았다. 누이는 큰 수술을 세차례나 했다. 그래도 누이의 병은 낫지를 않았다. 누이는 점점 야위어 갔고 나에게 간간히 오던 누이로부터의 편지도 어느날 끊어지고 말았다.
내가 군에서 제대할 무렵 누이는 또 다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세차례의 수술을 받은 후 또다시 병원에 입원한 것은 병세가 더욱 악화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그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누이는 무덤속은 답답할거라는 말을 가끔 했다. 그럴때마다 누이의 눈에는 눈물이 촉촉히 젖시어져 있었다. 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 나는 다음 학기로 복학을 미루었다.
병원에 입원한 누이는 고통을 더 이상 참아내기 어려웠던지 또 다시 수술을 원했다. 세 차레의 대 수술을 통하여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알터인데도 누이는 수술을 고집했다. 담당 의사는 수술을 할 경우 기력이 없어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누이도 그런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누이는 수술을 원했다. 결국 누이의 뜻대로 수술 날자를 정했다. 나는 누이가 수술을 받기 전날 밤 그녀의 병실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누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날 밤 누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천사의 모습이 아마 그와 같을 것이다. 하이얀 피부에 맑은 두 눈. 티 하나없이 맑은 눈망울에는 애처로운 빛이 역력했다. 누이는 아무 말없이 밤새도록 나를 바라 보았다. 나 또한 누이의 싸늘한 손을 꼭 잡은채 그녀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밤을 꼬박 새웠다.
아침이 되자 누이는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시간은 길었다. 저녁무렵에서야 수술은 끝나고 누이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쉽게 면회를 할 수 없는 중환자실에 아버지가 들어가셨다. 중환자실에서 나오신 아버지는 누이의 얼굴에 핏기가 없다고 했다. 나는 중환자실 복도에 웅크리고 앉아 누이가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밤 열한시 무렵이었다. 갑자기 의사들이 중환자실로 몰려가고 한 침대 주변에서 인공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누이가 아니기를 빌었다. 그러나 인공호흡을 하던 의사들의 몸짓이 멈추었을때 누이의 보호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그때 친구분들과 병원 앞 식당에 가 계셨다. 나는 의사에게 다가갔다. 담당의사는 고개를 떨군채 누이가 숨을 멈추었다고 했다.
나는 그 길고 긴 중환자실의 복도를 걸어서 병원문을 열고 나왔다. 그날 밤 병원 앞 넓은 길에는 하이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큰 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 마셨다. 술잔위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눈 위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께 누이의 죽음을 알렸다. 어머니는 넋을 잃은듯 아무 말씀도 않으시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셨다.
다음날 누이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맑은 개울에 뿌려졌다. 무덤속을 두려워 하던 누이는 어머니의 가슴에 커다란 무덤을 남기고 이승을 떠난 것이다. 나는 누이가 세상을 떠난 후 줄곳 누이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누이를 만나면 누이와의 재회를 기뻐하며 그것이 꿈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곤 했다. 죽은 누이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지 그런 꿈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누이는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누이가 보고 싶어서 꿈에라도 나타나길 간절히 기다려도 누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누이가 이승을 떠난지 어느덧 이십년.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 살아 있으면 중년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누이가 세상을 떠난지 스무 해가 되는 날. 먼 하늘을 바라 본다. 그곳에 누이의 얼굴이 있다. 두둥실 떠 있는 구름사이에는 언제나 누이의 어여쁜 모습이 있다.
누이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