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독백
잠깐 밖에서 후두둑 빗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잠잠해지고 후덥지근한 기운이 사라진 걸 보면
오늘밤은 더 이상 소낙비는 오지 않을래나 ...
술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지하에 사는 사람이
2층 우리집 맞은편 집에 대고 욕을 합니다.
그래 지하에 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
하수구가 막혀 거꾸로 나오는 물을 이해할 수 있어?
사내의 억눌린 가슴이
역류되어 흘러 넘쳤다던 똥물처럼
탁하게 흘러나옵니다.
사람들은 잠이 들었고. 어둠은 깊은데
사내는 쓸쓸하고
사내의 말을 가만가만 맞는 그의 아내는 가슴속이 이슬처럼
젖어가고 있습니다.
창밖의 소리를 듣는 나도 참 쓸쓸합니다.
앞집 사람들은 과일장사를 하는데
팔다팔다 망단하여 차마 버리긴 아깝고 자기 혼자 먹기에는
많을 과일들을 들고 와서
친절하게 저에게 주었습니다.
여름이라서... 속은 멀쩡한데 겉이 그래서...
아이들하고 먹으라고 한 비닐을 주었는데.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달디단 입으로 대답해놓고.
현관문이 닫은 뒤 혼자 난감해 합니다.
간간히 진정한 마음으로 내게 왔던 것들을 이런 식으로 받은 것들은
없었을까.
내가 타인에게 준 물건이나 마음들도 이런것들은 없었을까.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겝니다.
아이는 바라보기만 해도 입가에 침이 도는 천도복숭아를
아무리 일러도 자두라고만 합니다.
생기다 말았는지 복숭아는 정말 자두만 합니다.
복숭아를 한 입 깨물어 보고 모두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말았습니다.
구연산 만큼이나 심니다.
한여름 그렇게 신것만 눈이 벌게서 ?아다닌
지나버린 어느 시간이 공중에서 잠깐 떴다 사라져 갔습니다.
식구들은 영문도 모른체 이런 과일을 샀다고 한마디씩 하고
나는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빙그레 빙그레 웃다가
봄 일찍 자홍색으로 피었다가 지는 옛날 살던 집의
울타리에 핀 명자나무꽃 아래로 걸어내려가
그집 똘똘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짖던 말던 탱글탱글하고 돌자갈보다
더 단단한 명자나무 열매를 몇 개 따왔습니다.
더운 여름날 오후 명자나무 열매를 가지고
발길질을 하였습니다.
헛발질까지 포함하여 온몸이 다 젖도록 발길질을 하다가
명자나무집에 사는 사람이
나랑 마음이 친한 사람이
먼 이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말을 생각해냈습니다.
낯선 곳으로 살기위해 떠난다는 그 말을 차마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어
그 집 담을 지나가고 올때마다 마른 침을 삼키고 한숨을 쉬었건만...
내일이나 혹은 모래쯤. 팔다팔다 망단한 과일이 내 몸에서 다 삭혀질 무렵
명자나무집으로 놀러나 가 볼까.
20010709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