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 글라스를 벗자
비와 햇빛 사이에 사랑 싸움이라도 벌어진 건가?
하루는 비, 하루는 햇빛. 하루 중에도 해가 났다가 비가 왔다가 종잡을
수 없는 연인의 마음 같다.
오늘 아침엔 8시도 안 되어도 벌써 햇빛이 쨍쨍이다.
서서히 밀리는
차들 사이를 비껴오며 따가운 햇빛에 차양을 찾다가 문득 잊고 있었던 썬 글라스를
꺼내 들었다.
드디어 이 썬 글라스의 위력을 보일 때가 왔다는 듯
두 손이 닿자 세상은 금세 회색 빛으로 변한다. 도시의 아침은 금세
해질 무렵으로 변해 버린다.
갑자기 눈앞에 안개 세상이 펼쳐졌다.
원래 비를 싫어하고
밝음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비 온 날처럼 뿌옇게 변해버린 세상이 익숙하진 않다.
다시 썬 글라스를 벗겨낸다. 아침은 여전히 상쾌한 미소를 띄고 있다.
썬 글라스를 낀 것이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다. 구입하고 때때로 한 번씩 시도해 보았었지만
5분을 더 가지 못했다.
그 뿌연 세상의 답답함을 견뎌내지 못하는 나의 밝음 때문에
오늘도 5분이 못돼 그것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아! 이런 일이, 이런 건가?'
익숙해진다는 거. 처음과는 달리 그것은 내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첫 느낌의 그 답답한 세상과는 달리 약간의 어둠 정도. 검정 세상이 회색 빛 세상이
되어 다가오는 것.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햇빛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어색해지고 어둠을 친구 삼는 것이 자연스러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치 암흑의 소굴에 첫 발을 들여놓은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갑자기 한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어둠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울한 그늘을 달고 다녔던 여인. 그녀가 떠나면서 한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랬어요. 제가 어두울 때는 꼭 그런 사람만
만나고 제가 밝아지니까 또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구요.
어릴 적 친구를 다시
만나 사귀니 저도 그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서 어둠 같은 건 잊게 되더라구요.
앞으론
밝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정말 그랬다. 내가 어두운 생각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판단할 때에는
곁에도 늘 어두운 사람들이 모였었다.
난 그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었는데, 그런 나의
기운이 그런 사람들을 부르는 거라고 누군가 가르쳐 준 기억도 났다.
어쩌면 그래서
더 어두운 사람들을 보면 그 어둠에서 끄집어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옛 모습이니까
하지만 더 두려운 건 밝음이 희망이 아니라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미 어둠에 익숙해져서 썬 글라스가 없는 세상에선
눈을 뜰 수조차 없는 그런 어두운 사람으로 마음조차 바뀌어버리는 거.
아직은 어둠이 내겐
낯선 손님과 같지만 썬 글라스와 친해진다면 빛이 내게 낯선 존재로 자리바꿈을 할
것이 당연하니까
주변의 어두운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썬 글라스를 바라보며 나는 외치고 싶어졌다.
'세상의 모든 썬 글라스들이여. 어둠을 거두어 모두 안경집으로 돌아가라.'
라고
오늘은
어떤 하루 되실건가요? 미리 한 번 그려보세요. 나의 하루니까 내
맘대로 한 번 그려보세요.
그 속에 썬 글라스를 벗는 거 꼭 잊지 마세요. 위 글자는 현대 행복체입니다. 글씨처럼 행복해지세요.
<여기는 윤빈이의 마음 속입니다. 바다와 함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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