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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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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과 객관의 차이


BY ns... 2002-11-22

"저 신문 광고 보고 전화했는데요."
"경험은 있으세요?"
"경험은 별로 없지만 시켜주면 열심히 할께요."
"나이는 몇 인데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일 년 늦게 된 호적을 핑게로 한 살 줄이고, 여기는 만 나이가 통용되는 미국이니 또 한 살 줄여서
"올해 마흔 여섯 인데요."
"나이가 좀 많으네요."

세 군데서 같은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들이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민가겠다는 날 알고 지내던 언니가 말렸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얌전히 살림하다 남편이 퇴직하면 연금 받아서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안락한 노후를 즐기라고 하였다.
"그런 삶은 싫어요.
죽는 날 까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주어진 재능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사용해 보고 싶구요.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면 아무래도 느슨해져서 열심히 살 것 같지 않아요.
남편이 퇴직하면 연금보다 일시금으로 받아서 장사를 해 볼래요."
그 언니에게 했던 말이다.

난 내심 자신이 있었다.
장사 경험은 전혀 없어도 무슨 장사든 벌이기만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도 큰 소리 쳤다.
"이민 가면 내가 장사해서 당신이 벌던 것 보다 더 벌테니 걱정 말고 당신은 골프나 치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세요."

미국은 한국과 달라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한다.
경험이 없으면 장사할 장소를 얻기가 어려운데 건물 주인이 나중에 세를 받지 못할까 봐 빌려 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먼저 경험을 쌓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번번히 거절이다.
무슨 일이건 내게 맡겨 주면 똑소리 나게 할 자신이 있는데 그들은 샌드위치 싸는 일마저 경험을 앞세우고 나이를 앞세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일자리는 고사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전화 목소리만으로 거절이다.
울 아버진 날 산 꼭대기 혼자 던져 놓아도 굶어 죽지 않을 녀석이라고 했는데...
내 친구는 날 보고 능력 있는 가시내라고 했는데...
또 다른 친구는 대학 생활에서 자기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날 친구로 사귄 것이라고도 했는데...
그러나 모든 것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나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아무 경험도 없고 나이 든 아줌마'인 모양이다.
샌드위치 싸는 일마저 마음 놓고 맡길 수 없을 만큼 무능력한 사람 말이다.

주관과 객관의 엄청난 차이가 날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난 객관적인 평가를 나에 대한 정확한 평가로 받아 드리고 싶지 않다.
주관적인 평가가 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아닐지라도 주관적인 평가 대신 객관적인 평가를 나에 대한 평가로 하기엔 그 차이가 너무 엄청나다.
그리고 난 아직은 능력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골프를 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남편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언니에게 스포츠 카를 사 주겠다고 한 약속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실망스런 사람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