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했던 지난 밤 몇 번씩 잠을 깨는 수난 끝에
날밤이 새어 버리고,
그녀는 오늘도 칼 같이 일어나 냉수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만진다.
마지막 단장을 마친 그녀의 등뒤에 다가선 그 남자
"아침마다 단정한 모습으로 이렇게 하루를 여는 모습이 사랑스럽
군...."
"사랑은 무슨.... "
무뚝뚝한 그녀의 대답 때문에 길지 못한 여운은 그렇게 끝나버리는
데....
이렇게 무드가 없어서야...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은 아침인걸...
아직도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봐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
니...
간 밤의 무더위가 싹 물러가는 듯 즐거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주한 아침을 연다.
아침 준비를 돕는다 왔다 갔다 바쁘기만 한 그
도움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언제나 빈틈 없는 그녀에게 턱 없이 성에 차지 않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그 남자의 애정 표현법이라면 그냥 한 눈쯤 질끈 감는
다고 뭐 그리 큰 일 나겠는가?
언젠가 그 여자는 그에게 그런 말을 한 걸로 기억한다.
"당신은 개그맨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맨날 식구들 웃기는 게 취미
이니까."
우스개 소리 잘 하고, 너털 웃음 잘 웃는 그는 그냥 편하게 세상을 사
는 사람 같다.
좋아하는 스포츠도 바쁜 생활 속에 하지 못하고 사는 게 조금은 안되
어 보인다.
가끔씩 그녀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사랑해"라고 말 잘하고,
핸드폰 쳐서 전화 안 받으면 하고 싶은 말때문에 열 받고 그런다.
옛말에 여우 같은 마누라 하고는 살아도, 곰 같은 마누라 하고는 못산
다는 말이 있다는데 ...
우린 안팍이 바뀐 탓에 여지껏 잘 산걸까?
하긴 십년지기 결혼 생활동안 참으로 많이도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그의 그런 여우(?)스런 애교 때문에 곰 같은 마누라의 애끓는 속이
그때마다 잘도 풀리곤 했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
그가 푸르르 쉽게 달구어지는 양은 냄비의 속성을 간직했다면
그녀는 은근히 달구어지는 가마솥의 속성을 간직한 걸 테지.
다만 그의 사랑이 쉽게 식어 버리지 않길 바라면서....
그가 늘 시끌 버끌 이야기 보따리를 늘어 놓는 사람이라면
그 여자는 언제나 말이 없이도 그자리에 서 있는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지난 겨울 열 많은 그 남자 덕에 든든한 난로 하나 갖고 살았던 그 여자
올 여름은 시원한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그의 그늘로 남고 싶다.
늘 현장에서 일을 하는 그 남자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기세를 보니
지금쯤 엄청 시달리고 있을 듯 싶다.
숨이 턱에 차서 헉헉 거리고 있진 않은지....
무거운 체중 덕에 올 여름은 훨씬 힘들테지...
그 여자 시원한 에어콘 바람 아래 사무실에 있다는 사실 조차
괜스레 미안해 지는 시간
"여보, 점심은 드셨어요?"
다정한 전화라도 해야지....
아침의 여운이 점심까지 이어지는 걸 보니
곰 같은 마누라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보네요... 하. 하.
이렇게 무더운 여름 날
그 남자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상쾌하게 할 수도 있음에 새삼
감사하고 싶다.
여우 같은 남편을 위하여 서로 잘 통하는 여우 같은 마누라가
되기 위해 쬐금만이라도 노력하는 여름이었으면 ....
아름다운 우리의 여름이 되질 않을까....
시원한 바닷가의 추억까지도 만들며
곰 같은 마누라 땜에 더 더운 여름이 되질 않기만
바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