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고 탄천을 내려다보니 가을 하늘과 함께 아침을 가르며 뛰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왜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는지 나도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갔다와서의 상쾌한 기분을 위해 집안 일도 좀 정리하고 차나 한잔 마시고 나가야 겠다는 생각에 신문을 들고 쇼파에 비스듬히 누웠다.
매일 느끼는 일이지만 오늘의 기사는 좀 심한것같다.
남의 것 가지고 선심쓰기 좋아하는 탓인지(국민의 세금을 남의 것으로 아시는 분들)무더기 돈을 조건없이(?)북녘 땅에 바쳐드린 얘기, 참빗수사를 했다는데 개구리 소년들의 불쌍한 모습들은 11년 동안 도끼빗(파마머리를 위한 엉성한빗)으로도 빗지않은것 같은 분노가 정말 가슴져미게 한다.
그러다가 귓가를 흐르는 눈물을 닦을수 밖에 없는 글에 매스컴의 고마움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나를 부추긴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이미 사라져 버렸지만....
모 교수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연이다.
산맥같던 어머니가 지금은 등 굽은 작은 노파로 변한 모습, 검버섯이 핀 어머니의 얼굴에서 수줍음의 홍조를 띄시며 옛 시조를 읊으시는 모습,흔한 동남아 여행한번 못 보내드린 아들의 죄스러움을 무색케하며 해외로 나갈때마다 독립운동하러 만주 벌판으로 보내시듯 배웅하시는 어머니의 모습, 징한 세월을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을 글로서도 남기고 싶지않아 묘비에만 '장렬하게 살았던 한 여인이 여기에 묻혔노라'이렇게만 적고 싶단다. 행여 도둑이라도 맞을세라 가슴속 깊이 혼자만이 간직하고 싶은 애절한 효성심을 보면서 문득 나의 노후를 생각하게 한다.
나의 삼남매는 어머니를 노래할때 어떠한 모습의 어머니를 기억할까? 매를 들고 종아리를 치던 엄한 모습?
삶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때로는 한숨짓던 모습?
매일 바쁘게 동동거리며 살던모습?
남들보다 뒤질세라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저희들을 채근하던 모습?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던 나약한 모습?
그러다 이제는 자식보다 남편을 더 챙기는 서운한 모습을 기억하지나 않을까?
그래도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 눈물로 기도하던 모습이나 기억해 주려나? "우리 엄마는 매사에 너무 적극적이고 열심이지 않니?"하는 두 딸아이의 대화에서 위로라도 받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아직 아름답게 노후를 맞자는 생각은 너무 이르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한테는 내가 산맥으로 있어야 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조그마한 언덕으로라도 남아있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