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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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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신고!


BY allbaro 2001-07-03

실종신고!

갑자기 우리 사는 세상에서 선생님들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인생의 1/3을 차지하는 그리 짧지 않은 우리의 파릇한 성장
의 시간을 함께 해주신 그리운 그분들이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시간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갑자기 어디론가 단체로
떠나버리셨습니다. 몇 번의 촌지에 대한 부끄러운 논쟁 끝
에, 몇 번의 그렇고 그런 기사로 변해버린 이야기 끝에 갑자
기 실종되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운 그 시간 속에
우리의 스승님들은 그렇게 어깨가 처진 남루한 신문기사 속
의 모습이 아니셨습니다.

당신의 도시락을 주린 제자에게 주어 버리고 빈 교정을 홀로
거닐던 선생님. 어려운 친구들을 불러서 슬며시 무상이라고
푸른 도장이 찍힌 노트를 나누어주시던 선생님, 옥수수 빵을
따로 챙겨서 다른 친구들 눈치 않게 가방에 넣어주시던 선생
님이셨습니다. 운동회때 우리반 아이 잘한다!고 함께 뛰고
넘어지시던 눈자위 파란 젊음이셨고, 가정방문이라도 한번
할라치면 집안 잔치를 준비하고는, 방문해 계시는 시간 내내
머리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던 어머님을 보며 우와아~ 선생님
은 역시 높은 분이구나아... 하고 감탄하던 일이 흑백사진의
추억으로 병 속의 시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만 그 병이 어
디에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
아 부끄럽습니다.

I am a Boy로 처음 영어를 접하고, 칭키스칸이 아시아 대륙
을 휩쓸던 이야기를 들으며 잔뼈가 굵어 졌고 수학여행에서
처음 독한 소주를 입에 대었을 때, 이제 더 나이 먹으면 먹
지 말래도 먹게 될터이니 너무 서둘지마라~ 며 이젠 죽었다!
를 연발하던 까까머리 중학생들을 잘 타일러 돌려보내 주신
대사건과 체육시간, 반 전체가 시냇물에 나아가 물싸움을 하
던 천둥 벌거숭이의 시절은 또 여름이면 가물하게 돌아오는
낡은 앨범 속의 빛 바랜 사진이 되었습니다. 눈이 몹시 내리
던 졸업식 날, 잊은 물건을 가지러 교실로 돌아갔을 때 혼자
맨 앞자리의 작은 책상에 앉아 턱에 손을 고이고 계신 선생
님의 뒷 어깨에서 어쩌지도 못하는 고독과 시간의 무게를 느
끼곤 한참을 철없던 한 중학생도 그렇게 어둑한 교실 뒷문에
서 있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교련복 속의 고교생이 되어 데미안과 팡세와 파우스
트 속에서 헤메일 때, 그리고 처음 마주친 사랑에 온통 어린
가슴이 새카맣게 타오를 때, 너 오늘 잠시 들러라 하고 더벅
머리 몇 명을 모아서, 오늘 귀중한 손님이 오셨으니... 하며
사모님을 재촉하여 맛있는 부침개와 오래 묵은 머루주를 내
어 오시고는,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하느니... 사랑은 적
당히 때를 기다려야 하느니... 그리고 이놈이 제일 말 안 듣
는 놈이지! 이 녀석아 너 때문에 10년은 늙었다. 하며 너털
웃음을 지으시며, 지긋이 눈을 감은 채 윤동주의 서시를 천
천히 읊어 주시던, 숲 속의 푸른 바람을 여드름 투성이의
얼굴에 불게 해주신 국어 선생님의 모습은 따로 접어둔 부끄
러운 고백의 시간과 함께, 노도의 시기에 추억의 상자 속 가
장 깊은 곳에 넣어둔 얼룩진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 먼지아래, 일상생활의 위로 지났습니
다. 이제 어디론가 사라진 선생님을 그리고 스승님을 찾아야
할 시기입니다. 어른도 없고 존경하는 분도 없고 마침내는
선생님마저 사라져 버린 제법 많이 일그러진 세상에 살게 된
우리는, 사라져 버린 선생님을 찾아 우리의 지난 시간을 고
해성사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어둠으로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 시기에 다시 눈망울 초롱하던 수업시간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반장은 차렷!을 하고 우리는 인사를 하고, 잘
한 친구는 칭찬을! 잘못한 친구는 때로 빳따!를 맞으며 눈
물겨운 인생의 보충수업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도 될 정도의 사람인가...
하아아아~ 한숨만 땅에 끌리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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