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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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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 이야기.7


BY 손풍금 2002-11-16

(사는것이 눈물겨울때가 있다.)

가끔 듣는 이야기가 있다.

'글이 궁상맞아.. 너덜너덜 따라다니는 궁핍이 읽다보면 짜증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한다.

'그렇치?..나도 그래.... 쓰는 나도 화가 나...그런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나도 알고 있어..하지만......'

하지만.....하지만 나는 상처를 사랑한다.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하고 통탄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한없이 불행하겠지만
지금 가난해진 내가 가난과 아픔을 마음껏 사랑하는거다..
이쯤되면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가난을 다스리게되고 상처를 다스리게 되는 운명을 놓고보면 내가 지금 처한 환경을 좌우하며 살아갈 주인이 되는것이다.
이 간단한 방법... 그래서 당당해지는거다.
어찌보면 건방진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찾아온 가난과 불행을 처절하게 즐기며 쫓아 보내는것이다.

실컷 소리내어 울어본적이 있다.
사실 이나이 되어 엉엉 소리내어 후련하게 운다는것이 내놓고 하기엔 부끄러운일 아니겠는가...

지난날..시골에 들어가 살게 되었을때 농사일에 품을 판적이 있었다.
농사일이라니... 아마 나를 아는사람들은 헛웃음을 칠 일이다.
'김치도 제대로 담지 못하는 네가 일품을 판다고?...'
후에 그말이 내 스스로에게 얼마나 부끄러운말 이였던가 라고 치부했다.

하루 품값 이만 오천원..
새벽 여섯시부터 일 시작해 저녁 여섯시에 집에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귀한 농촌.
동네사람들은 마흔살된 나를 보고 새댁이라 불러주기 여념이 없다.

'새댁.. 이런말 하긴 좀 그렇치만 ..우리집 고추좀 따줄텨.. 그냥 따기만 하면 되는데..사람 구하기가 힘들어 저렇게 잘 익은 고추가 밭에서 다 물러터지고 있는걸 생각하면 밤에 잠이 다 안와 ..'하는 몸이 달아 찾아온 동네 어른께

'그냥 따기만 하면 되요?... 잘은 못하지만 해볼께요..'
이렇게 시작한 품팔기는 동네에 고추 잘딴다는(?) 새댁이 이사왔다고 소문이 나 저녁이면 우리집앞에 경운기가 멈추기를 하루 몇차례...

고추따는 품을 팔러 다니게 되었다.

이 어리석은 위인이..
동네 어른들이 '아니 워째 저리 잘한댜... 세상에.. 요새 젊은사람들은 아무거나 잘혀.. 농사일도 안해봤을텐데.. 참 잘혀..이쁘구먼...'하는 소리를 내등뒤에서 할때 마다
나는 더 잘하는척하고 허리가 휘는줄도 모르게 고추를 땄다.
일잘한다고 소문이나자 일품이 들어오면서 밀리기 시작했는데..

일시작한지 열흘쯤 지났을까
어깨와 허리가 끊어지는듯 싶어 밤이면 끙끙.. 거리는게
온몸 구석구석 안쑤시는데가 없어 몸살이 되게 찾아왔구나 하며 잠을 간신히 청했는데
새벽녘되어 일어나보니 비가 내리는게 아닌가...

아..잘됐다..오늘 하루 쉬어야지..하는데 경운기가 집앞에와 멈춘다.
방문을 채 열기도 전

'새댁, 오늘 고추 따야되유.. 이제 장마진다는데 오늘 안따면 저 고추 밭에서 다 녹아 버려서 안되니까.. 우비입고 얼렁 나와유..새댁...'한다.

부슬부슬 떨려오는 몸에 한기가 느껴졌지만 우비를 입고 나섰다.
그집 고추밭은 산중턱에 있는 야산을 개간하여 만든 밭이였다.
꼬불꼬불 올라가는 비탈길에 뱀도 수차례 지나가는것을 보고 손발이 다 오무러들며 식은땀이 정신없이 흘렀다.

조금씩 내리던 비가 오전 열시 새참을 먹고 나니
거센 빗줄기로 바뀌었다.
우비를 뒤집어 쓰고 고추를 따는데 빗줄기가 어깨와 등을 때리기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쏟아지는 빗줄기가 몸둥이로 내려치는듯 어깨가 부러질듯 아팠다.

땀이 정말이지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어지러워서 잠깐 쉬면서 함께 고추따는 아주머니들을 바라보았는데
아무말없이 푸대에 고추를 담으며 줄을 맞춰 나가고 있었다.

'평생을 저리 힘든일을 하고 살면서도 아무 불평없이 고운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동안 편하게 산 나는 이까짓것 쯤이야..벌로라도 받아야지...
내 옆고랑에서 고추따던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더니
'아고..새댁.. 얼굴이 하야네.. 아니.얼굴에 흐르는.저게 땀여..비여?.. '하고 소리치자.. 줄맞추어 고추를 따던 아주머니들께서 일손을 놓고 다가와

'병났네베.. 며칠 동안 내리쉬지도 않고 일을 하더니... 아고..이 열좀봐..
집에 가야겠네.. 고추따다가 병났구먼...'하고 걱정을 하였다.
밭주인이 경운기에 데려다 준다고 시동을 걸기에

'저혼자 갈께요.. 일하세요.. 점심도 챙겨주셔야 하잖아요.. 저혼자 갈수 있어요..'하고 길을 타고 내려왔다.

소나무숲이 울창한 곳 여기저기 샛길따라 내려오며
무슨물체의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뱀이 지나가는듯해 온몸이 다 오그라들면서 그자리에 멈추어 서며 비틀거리고는 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내려가도 내려가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방향감각이 전혀 없는 나는 길을 잃고 헤메고 있었다.
도로는 멀리 보이는데 내려가는길이 꼬불꼬불 얽혀있어 이곳으로 가다보면 다시 올라가는 길로 이어져있고....

몸은 점점 불덩이 처럼 뜨거워지며 한기가 느껴져 아래,윗 이빨이 닥..닥..거리며 부딪히기 시작했다.
땅은 질퍽거려 흙이 달라붙어 신발은 무거워지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내려올때 주인이 넣어준 봉투가 손에 잡히어 꺼내어 보니
봉투속에 이만오천원이 들어있었다.
그 돈을 꺼내어 보고 다시넣었는데 그다음부터 눈물이 나오는거다.

빗소리는 요란한데 빗소리에 질세라 소리내어 '엉..엉..엉.'하고 울기 시작했다.
어렸을적.. 나를 두고 엄마가 혼자 외갓집갔을때 골목입구에 앉아 울었던것 처럼
소리내어 '엉..엉... 엉...':하고 서러워 울면서 길을 찾아다녔다.

이놈의 길이 도대체 어디간겨..나쁜놈의 길... 하고..엉엉.. 울었다.

내 그처럼 소리내서 크게 울어본적이 없었다.
울음이 지치고 나니 그때서 길이 보였다..멀리 국도가 보여
그길을 건너가면 우리동네인데.....

앞으로 내 그처럼 크게 소리내어 울어볼날이 또 있을까...
지금 생각하니 참 시원한 울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