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경이 기말고사 끝나는 날입니다. 노는 것이 특기고 취미인
내가 이 날을 ?摠Ⅸ?있겠습니까? 딸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
을 완벽히 짜놓았지요.
시험 끝내고 헐레벌떡 들어오는 딸에게 현관문 막아서며 빨리 나가자
고 채근을 시작했습니다. 엄마, 나 더워 죽겠어. 샤워 좀 하고...야, 야
뭔 샤워냐? 샤워는 저녁에 해야지. 엄마, 왜 그래? 왜 그러긴, 너 기다
리다 아사할 지경이다. 빨리 맛있는 것 사먹으러 나가자.
어이없다는 표정의 딸네미 서둘러 끌고 나가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은
백반집으로 향했습니다. 사무실 밀집지역이라 그런지 열다섯가지 반찬
이 그득한 백반값이 삼천원입니다. 이거이거, 얼마나 싸고 맛있는 줄
아십니까? 딸도 눈알이 휘둥그래져갔고 우와~ 감탄사를 끝치지 못합
니다.
딸, 영양보충시키고, 다음은 공과금 수남. 그리고 책방으로 직행을 하
였습니다. 참 그전에 한가지를 빼뜨렸군요. 어젯밤 꿈이 하도 기똥차
복권 세장을 구입했답니다. 헤헤...근데 오랜만에 복권을 샀더니 그 사
이에 가격이 싸졌더군요. 또또복권이 예전엔 이천원이었더랬는데 천원
이라 하데요. 참말로, 더러는 싸지는 것도 있구만...
책방에 들러 아들놈, 맘 잡고 공부 졸 하라고 참고서 몇권 구입했습니
다. 그리고 자경이에게 엄마가 농사진 밭 구경시켜준다고 창평으로 직
행했습니다. 딸아이도 엄마 실력이 궁금한지 빨리 보러가지고 난리더군
요.
내가 농사짓는 마을 초입에는 오래된 고가들이 즐비한 마을이 있습니다.
고색창연한 양반가옥, 바로 창평고씨 씨족마을이지요. 고래등같은 기와
집에 둘러싸인 돌담이 너무 아름다워 나는 곧잘 우회도로를 비껴 일부
러 동네 한가운데로 둘러 가곤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딸에게 아름다운 이 고을을 보여주기 위해 두말 않
고 방향을 틀었습니다. 단정하고 품위있는 돌담 위에 주황빛 능소화가
서리서리 담타고 만발이었습니다. 돌담 안 가생이에는 흰색, 빨강색, 분
홍색의 접시꽃이 키자랑하듯 늘씰늘씬 뻗어있고, 그 한편에는 노란 원추
리꽃이 수즙은 자태로 다소곳이 땅을 내려보고 있습니다.
자경아, 저 돌담 좀 봐라. 얼마나 아름답니? 봐봐, 저것이 능소화꽃이란
다. 정말 기가 막히지? 너무 좋아 철부지 계집아이처럼 재재거리는 엄마
를 바라보던 딸이 불쑥 입을 엽니다. 엄마, 저런 집들 보며 이다음에 저
렇게 꾸밀려고 생각하고 있지?
그래, 너 대학가면 바로 시골로 들어올란다. 서까래 썽썽한 농가를 사서,
참 농가 중에도 꼭 돌담이 둘러처진 집으로 골라 살란다. 집안은 살기 편
하게 손좀 보고 꽃밭에는 갖가지 야생화를 심을란다. 금낭화, 매발톱, 자
생수선화, 참 그리고 노란색과 남색의 창포꽃도 무더기로 심어야지...
마당 한구석엔 도라지도 심을란다. 자경아 도라지꽃 너도 알지? 얼마나
아름답니? 난 도라지꽃만 보면 괜히 가슴이 무너지려한다. 너무 애처로와
보여서...아참참, 제일 중요한 것, 돌담위에 서리서리 능소화를 올릴거야.
텃밭엔 고추, 상추, 쑥갓...푸성귀를 가꾸고 담밖에는 박덩쿨도 올릴거다.
물론 그 옆엔 호박구덩이도 몇개 파야겠지? 정신없이 떠드는 엄마를 본
딸이 슬며시 웃음을 집니다. 우리 엄마, 벌써부터 행복해 죽을 지경인가
봐? 엄마, 그런데 나도 시골이 좋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어. 난 벌레는
질색이거든? 엄마, 벌레 못들어오게 방충망은 튼튼히 해야 돼? 별거를 다
걱정하는 딸네미와 함께하는 망중한...
오늘은 정말 유쾌한 하루였답니다.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