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18 00:35:47
<시림병>
늦은 밤의 귀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선 곧바로 드라이를 작동합니다.
오래도록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도 몸은 풀리지 않습니다,
아니 풀렸다가 나옴과 동시에 다시 얼어(?) 버립니다.
뜨거워서 발을 담글 수조차 없는 물에 물을 갈아 가면서
십분 넘도록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발은 차갑습니다,
아니 시립니다.
한참을 드라이로 꼼꼼이 더운 기운을 쐬어줬지만
이불 속으로 들어간 내 발이 내 몸에 닿을땐 나조차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똑바로 누워서...발은 맨 끝에 있으니 몸에만 닿지 않게 조심하면 되고
손을 살며시 엉덩이 밑으로 집어 넣으면 엉덩이가 시리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엉덩이에서 조금 거리를 둔 채 차렷 자세를 취합니다.
같은 제 몸인데도 끌어안을줄 모르는 이 아이러니.....
어릴때부터 유난히 손발이 차가웠던 나였습니다.
8남매의 7번째...
그 옛날엔 한 방,한 이불에 누워 있었던 적이 많았기에
외풍 센 시골집 한 겨울 이불속에 발을 넣고 티비를 보고 있노라면
아버지의 음성이 절 놀라게 하곤 했더랬습니다.
"이거 누구 발이냐?"
아버지를 놀라게 해드린 것이 죄송해서 얼른 발을 움츠렸고
그러다간 슬그머니 할아버지 방으로 건너 가곤 했었습니다.
학교를 다닐땐 친구들이 늘 그랬습니다.
날씨는 별로 춥지 않은데 너때문에 춥노라고-----.
조금만 추워도 덜덜 떨면서 다니고,얼굴이 창백했으며
손조차 시퍼렇게 얼어 있곤 했으니까요.
초등학교 시절엔 겨울마다 손이 얼어 침을 맞고
손을 칭칭 동여맨 채 학교에 가면 필기는 친구가 모두 대신 해 주었고
고무줄 놀이에서는 난 항상 <오야>였습니다.
추위를 얼마나 많이 타는가 남편과 데이트하던 황금같은 연애시절에도
겨울엔 핑계를 대곤 구들장을 지고 있곤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선 발만 시리던 것이 발목까지 시려 겨울엔
목이 올라오는 부츠를 신어야 했는데 둘째아이를 낳고는
조금 더 심해져 종아리까지 시려서 토시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곤 셋째아이를 낳았습니다.
이젠 허벅지까지 차가워져서 겨울에 들어서면 내복부터 준비해야했고
토시를 했는데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림"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부터 남편 양말을 신습니다.
어느날 신어본 남편의 양말이 무릎부근까지 올라오니까
좋아서 신게 된 것이 이제 남편의 양말은 모두가 저와 남편의
공용양말이 되었습니다.
차가운 바깥공기를 맞으며 종종걸음으로 집에 들어오면 두시간 넘게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앉아 있어도 좀체 다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약을 먹어봐도 체질을 완전히 바꿔주지 않는한 이 "시림병"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남편은 차디찬 시멘트 벽돌같은 내 발을 잘도 참아내는데
한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 그 차가움에 대해선 경이감을 표합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합니다.
"내 다리가 네 다리로 인해 얼겠다"고.
아무리 남편이 손으로 주물러 주고 뱃속으로 집어 넣어줘도
풀리지 않습니다.
겨울에 태어났는데도 왜이리 겨울은 제 몸의 적일까요?
머리로는 겨울을 좋아하지만 제 몸은 겨울을 버거워 합니다.
이 겨울...또 얼마나 제 몸은 힘들어야할지...
그렇게...배고 고파 잠이 안오듯 발이 시려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겨우 잠이 들면 어느샌지 모르게 새벽이 가까이 와 있곤 합니다.
<font color=teal>
작년 겨울에 썼던 글인데...
며칠전부터 발목이 시림을 느끼면서 또 겨울이란 녀석이 가까이 와 있음을 발이 먼저 알려줍니다.
친구와의 통화에서 친구도 같은 증상을 이야기했을 때 맞장구 치면서 좋아했던건 아마도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껴서가 아닐지..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거 있잖아,이제 알았어..어디서 봤더니 랩을 발에 감고 양말을 신고 자면 된대..혈액 순환도 잘되고 발이 따뜻해서 잠도 잘 온다네"
라는 말에 근데 어찌 양말을 신고 답답해서 잘 수가 있니 했지만 시려서 잠을 못이루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올 겨울엔 꼭 해보려 합니다.
어제 저녁...
남편에게 이 이야기가 생각나 들떠서 말문을 여니 남편이 산통을 깹니다^^
"그거 비닐 감아주고 양말 신고 자면 되는 거잖아"라구요.
참나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여지껏 왜 말을 안해 주었느냐고 따졌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생각해 보면 모르냐고 되레 핀잔입니다.
올 겨울 내 시림병은 많이 나아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