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우리 큰시누이 남편 생일을
우리집에서 차려주었다.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장모는 이 세상에 없으니
처남댁인 내가
장모역활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친정집 생각할때나
친정에 다녀 올때면
늘 시누이들 생각이 난다.
물론 우리집이 시누이들에겐 친정집이다.
내가 아무리 한다고 해도
친정집이라는게
친정엄마가 없으면
좀 허전할것 같다.
우리 시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셨다.
우리 시아버지는 내 남편이 7살때
돌아가셨고, 우리 시어머니는 10년뒤인
17살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남편이 내게 청혼을 하면서
고백할것이 있다고 해서
난 과거의 여자에 대해 고백을 하는가 해서
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들었다.
그런데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길 하는거다.
안스러운 마음에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곤 다짐을 했다.
이 남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어야겠구나...
엄마가 필요할땐 엄마가 되어주고,
친구가 필요할땐 친구가 되어주고...
이 남자에게 필요한 그런 사람,
이 남자가 위로받고 싶어 하는 그런 대상이
되어주어야지 하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부부싸움도 하고 살았지만,
난 남편에겐 늘 마음이 약했다.
싸우고 미워서 서로 등돌리고 자다가도
자는 남편을 들여다보면
벌써 안스러움이 밀려온다.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들었겠지 생각하고
남편 얼굴을 조용히 쓰다듬으면
남편은 어느새 날 꼬옥 안는다.
그래서 우리 싸움은 오래 가질 않았다.
남편이나 시누이들이나
또 너무 어려서 부모를 잃은 막내인
우리 시동생이나 다 생각하면 안스럽다.
시동생은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무척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말이 없어서
동서가 너무 답답해한다.
그래서 동서랑 어쩌다 통화를 하게 되면
통화시간이 길어진다.
"형님! 입에 곰팡이가 피겠어요.
어쩜, 그렇게도 말을 안한대요..."
같은 여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재미있게 살아갈 세대인데
어찌 저리 재미도 없게 사는가 싶어서
안스러운 마음도 들고,
또 시동생 생각하면
시동생이 자라온 환경때문에 그런가 싶어서
시동생도 안스럽고...
난 사람냄새가 좋다.
그래서 좀 번거로울때도 있지만
우리 집에 사람이 모이는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는
시누이들도 찾아올 친정이 생긴것이다.
우리 집에서 자주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남편 형제들이 다 함께 모인 자리가
난 흐뭇했다.
그래서 힘든 줄 모르고
늘 기꺼이 자리를 마련한다.
아침마당에서 수요일마다
사람찾기 하는 것을 한동안 남편이
자주 보았다.
그땐 시간이 맞아서 보기도 했지만...
그 프로를 보면서 남편은
"우리 경자도 어쩌면 저렇게
헤어져서 못보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참 다행이야..."
우리 아가씨(손 아래 시누이다)는
친척집에 맡겨졌었단다.
남편과 결혼하고 우리 아가씨 키워준
그 친척 할머니댁을 명절때면 찾아가곤 한다.
고마운 분들이시다.
우리 시동생은 둘째 시누이가
일찍 결혼을 하면서 데리고 살았다.
우리 둘째 시누이는 시동생들이 줄줄이
있으면서 어린 친정동생을 키우려니
여간 힘들지 않았을것이다.
시동생은 시동생대로 눈치밥도 많이
먹었을것이다.
부모 없다고 그 누구도 아닌
가까운 친척 어르신중에서 한분은
이들 형제를 무시하고
막 대하실때면 난 무척 화가난다.
처음엔 친척도 많지 않아서
명절때면 찾아뵙지 못할땐
전화로 문안인사까지 드리곤 했는데
서서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졌다.
일찍 부모여의고 다들 착하게 자라서
가정 일구고 사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게 생각하셔야 할 양반이
되레 자기 자식들 발뒷꿈치의
때만도 못하다시며 무시하실땐
정말 화가나고 슬퍼진다.
난 따뜻한 것이 좋다.
음식도 따뜻한 것이 좋지만,
따뜻한 가족,
따뜻한 이웃,
따뜻한 세상...
늘 우리 가족이 따뜻한 우애를
나누고 살 수 있길 바란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서로 위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그렇게 따뜻하게 부비고 사는것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