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헉!"
온 힘을 다해 뛰어도, 쫓아오는 '털북숭이' 녀석은 점점 더 가까워지는듯 했다.
왼쪽으로는 계속 강이 흐르고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키를 넘는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달리 빠질 길이 없었다. 그저 앞으로 달리는 수 밖에.
숨이 턱에까지 차서, 더 이상 뛸 수가 없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넓은 정원이 보였다.
뭔가 구원의 손길이 있을 것 같은 안도감에 그리로 뛰어가니,
온통 유리로 둘러쌓인 정자가 보였다.
'이제 살았구나!'하며 안으로 들어갔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당황하여 이리저리 돌아보니, 그리 멀지않은 강쪽으로 10여명의 사람들이
까만 옷을 입고 둘러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드는 순간, 나를 쫓아오던 그 털북숭이가 정자를 덥치는듯이
주위가 어수선해지며... 눈이 번쩍 떠졌다.
꿈이었다.
일요일 점심식사 후, 5주 전에 태어난 둘째 딸을 안고 어르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첫애가 돐이 되기 전에 쉽게 들어, 쉽게 태어난 아이였다.
첫째가 딸이라 둘째는 아들이었으면 하는 바램은 있었지만,
여전히 예쁘고 소중한 우리의 2세였다.
동양 아기들에게는 보편적인 황달증세가 조금 심해, 제 언니보다 사흘을 더
병원신세를 져, 우리를 안스럽게 했지만.
조금 찜찜한 꿈이었지만 곧 잊고, 저녁을 먹은 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악!!"
순이의 짧은 비명소리가 나를 깨웠다.
순간, 낮에 꾼 꿈이 뇌리에 떠오르고, 놀란 가슴을 안은채 순이의 비명이 들린
둘째의 방으로 달려가니,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진 순이가, 아기침대 앞에서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침대를 내려다 보니, 흐린 전등불 속에 둘째의 반쯤 파래진 부자연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코 끝에 손을 대어보니 숨이 느껴지지 않았고,
가슴을 풀어헤쳐 만지니 심장의 박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큰일이 났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이상하게도 온몸이 싸늘해지며
정신이 맑아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정신없이 무어라 중얼거리는 순이를 우리방으로 데려다 놓고, 전화기를 들었다.
'9-1-1'
전화를 받는 여자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다시 아기방으로 가,
대학 다닐 때 어설프게 배운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애의 코와 입 위로 내 입을 대고 숨을 불어 넣고, 손으로 가슴 부위를 압박하기도 하고...
그러기를 2 - 3 분..... 밖에서 싸이렌 소리가 들리고,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경찰 둘이 연락을 받았다며 안으로 들어왔다.
보통 응급상황 때 전화를 하면, 가까운 소방소에 속한 구급차가 먼저 와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뒤이어 병원 구급차가 와서 환자를 실어 나르고,
경찰이 와서 상황조사를 하는 게 순서인데, 한밤중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가 숨이 멎었다는' 긴급상황이었기 때문인지....
경찰에 의해 아이는 들려나가고, 순이와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경찰이 지시한대로 집에서 5분 정도 떨어진 아기가 태어난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응급실(Emergency Room)로 들어가 잠시 기다리니, 애를 데리고 먼저 떠났던
경찰이 안에서 나오며, 의사가 보고있다는 말과 함께 안타까운 눈인사를 하며
떠났다.
얼마를 더 기다렸을까?
누군가 우리를 찾는 소리에 일어나 돌아보니, 녹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우리에게로 오고 있었는데, 한줄기 가느다란 희망을 안고 기다리던 우리는
그의 얼굴에서 '너무 늦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S.I.D.S. 라 했다. (Sudden Infant Death Syndrom, 돌연 유아사망 증후군)
자던 아기가 갑자기 숨쉬기를 멈추는 병...
엎어 기르는 것 때문이 아닐까해서, 누워 기르니 사망율이 조금 줄었다는
얘기는 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원인을 확실히 모르는 병...
불은 젖이 아파서 깬 순이가 배고플 아이 젖을 먹이려고 갔을 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던 그 병.....
난생 처음 느껴보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나동그라졌다.
왜? 왜?? 왜, 내가???
믿지도 안는 신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나름대로 남에게 피해 안주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부족했던가?
이 큰 아픔이 내게 주어진 게 너무 분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누구에겐가 분풀이라도 하고싶은 섬뜻한 생각도 들었다.
아내가 열심히 믿고있던 종교가 저주스럽기도하고...
여태 열심히 살아온 게 헛 되었다는 허무함도 몰려오고...
낮에 꾼 꿈이 뭔가 말해주고 있었는데 라는 자책감도 들고...
그러다가,
앞으론 더 열심히,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뀌는 감정의 기복에 힘들어했는데,
순이는 나보다도더 심하게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시달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밤에 화장실을 혼자 못가서,
내가 그 앞까지 데려다주고 기다리곤했다.
다행히, 6개월 만에 지금은 둘째가 된, 셋째(딸)가 들어
그 충격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었으나,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애의 이름을 입에 올려도
크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안정되기 까지는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먼저 떠난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20년이 지났는데도,
순이의 짧고도 날카로운 비명을 바로 어제 들은듯...
인공호흡을 해주던 아기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지난 밤인듯.....
5주간의 인연이
서른이 채 안된 젊은부부의 가슴에 커다란 의문부호(?)로 남아
아직도 가끔씩 뒤를 돌아보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