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어느새.
배란다 밖으로 드리워진 얼마 남지안은 감나무의 열매가 까치 밥이 되어주고 아침 여섯시면 멀찌감치 이장님의 방송이 들려오는 그런 촌마을 아주 작은 아파트에 나는 살고있다
엄마가 편찬으셔도 쉽게 달려갈수 없는 곳 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문병한번 갈수없는 서울에서 멀기만한 작은도시 그런곳에 내가 산다
남편과 나는 사내 커플이다
남편과 연애할때 남편 부서 사람들은 남편의 집이 감자바우라고 했다
아! 병원 뒤에있는 감자바우 식당.
일찍이 그곳은 남들이 말하는 부촌 동네가 아이던가? 그러나 그런 나의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안았다
이 감자는 그 감자가 아니라 강원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래도좋았다 연애할때야 뭔들 안좋으리요
처음 남편이 시댁에 인사 가자고 할때 정말 아무 생각없이 여행하는 기분으로 따라나섯다
기차는 달렸다 푸른산 푸른들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따듯한 커피와 찐계란을 까먹으며 마냥 줄거웠는데.... 이게 웬일인가?
내 앞에 점점 드리워지는 까망 산 까망 물 남편 집은 강원도 탄광촌 태백이었다
태백역에 내린 나는 울고싶었다
시댁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길거리 오뎅만 줄기차게 먹어댓다
아무 생각없이 위장을 통과하는 오뎅의 숫자가 그렇게 만을 줄이야...
아무튼 태백 식구들과의 첫상면을 마치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래도 태백에서 살껀 아니니까.ㅣ
그런데 남편과 나의 결혼사실이 공식화된 어느날 남편은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도 여섯시간을 가야하는 경상남도끝 모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며 합격 통지서를 디밀었다 결정은 나보고하라나?
일은 지가 다 벌려놓고 와 나보고 수습하라하노? 태백갔을때 알아 봤어야 하는긴데...
처음온 이도시엔 레쓰또랑하나 없섯다
남편과 대판 싸우고 막차를 타고 여덜시간에 걸쳐 서울에 올라 갔을때
친정 집에는 발도 못 디밀고 친구만나 커피한잔 마신후 다시금 그 기차를 타고 다시 여덜시간을 달려야했다
정말 비참하지 안은가???
그뒤로는 싸워도 친정으론 절대 안간다.
정말 못살것만 같았던 촌 생활 어느새 육년이 흘러 칠년째다
큰아이는 여섯살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네살이 되는동안 서울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많앗고 IMF때에는 우리실랑 짤리면 서울 간다고 친구들에게 전화도 때리고 했었건만 의지에 한국인. 완전 공무원 체질인 우리실랑은 지금도 잘 다니고 계시다
지금은 그런 남편에게 감사하고 공해없는 햇살에 잘 그을러진 아이들에 모습을 보고있으면 너무 행복하다
도시사는 나의친구들 아줌마닷컴 한번 들어가볼 여유도없이 다람쥐 채바뀌 돌듯이 바쁘게 사는 나의 친구들에게 나는 지금 이말을 하고싶다
"느긋들 내 촌산다꼬 촌년이라해째? 내 지끔 이촌에서 을마나 행복한지아나? 느긋들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끼다.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