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눈을 떴을 땐 8시가 다 되어 있었고,아직 일어나지 못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얼른 씻을 준비를 하고 밖의 날씨를 살피는데 가느다란 비가 나리고 있다.
일단은 비가 내려도 갈 생각이었기에 씻은 후에 남편의 의향을 물었고 '가자'로 결론 내렸다.
오이와 당근 귤,방울토마토를 챙기고, 물 한병, 김밥을 챙겨 넣었다.
산에 오를 땐 수분이 많이 함유된 야채나 과일이 제격이기에.
차를 신용산 전철역 앞에 두고 서울대역입구 가는 표를 끊었다.
오랜만의 지하철 이용이라서 조금씩 헤매가면서 서울대역 입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496번 마을버스를 갈아 탔다.
관악산 매표소에서 표를 끊을 때까지만도 아이들도 오기를 잘했다는 신나는 표정이었다.
큰아이와 둘째는 일부러 돌이 많은 냇가를 따라 올라갔고 남편은 위험(?)한 곳을 가는 아이들에게 불만을 표시했지만 나는 은근히 부추기고 있었다^^
남편이 막내를 데리고 가고 나는 두 아이를 통솔하면서 평탄한 길보다는 시골풍경을 조성해 놓고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코끝을 스치는 솔향기가 너무 좋았고 의자마다에 얹혀져 있는 산이슬도 보기 좋았다.
바람이 부니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며 이파리들의 춤사위.
그 맑은 공기며 간간이 내리는 빗속에서의 등산객들의 밝은 표정들.
꼭 단풍든 풍경이 아니더라도 사람에게서 풍기는 모습에서만도 아름다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산에 오는 기쁨이 더한 것이리라.
모두들 넉넉해 보이는 표정과 가벼운 발걸음과 그에 더한 즐거운 대화와 미소.
제4야영장에 도착해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그곳에서 연주대.무너미고개.삼막사중에서 어디를 갈 것인가 결정을 해야했는데 우리는 정상인 연주대로 가기로 했다.
막내는 이제 지쳐가는지 왜 산에 왔느냐고 표정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큰아이가 사진을 찍겠다고 폼을 있는대로 잡았지만 빈사진기뿐 필름을 사오지를 못했다.
연주대를 400m 앞두고 내가 둘째를 맡았는데 남편과 두아이는 먼저 올라가고 이제 에너지소비를 다 했는지 땀방울을 흘리며 힘겨워하던 녀석이 푹 주저 앉으며 이제는 안간다고 한다.
나보다 한수위의 고집을 지니고 있는 이 녀석을 달래기란 그야말로 내 성질 다 죽여야 하는데 아무리 얼러도 되지를 않는다.
기다리고 있을테니 다녀오라고 하는데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해야지원.
30분을 그곳에 앉아서 울고 싶은 마음으로 달래서는 겨우 일어서긴 했는데 100m 가고나니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남편과 큰아이 말이 도저히 추워서 갈 수 없으니 그냥 내려가자고 하는 것이다.
예까지 와서 정상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돌아갈 수야 없었기에 둘째를 남편에게 맡기고 큰아이를 데리고 올랐다.
제3깔딱고개에 이르니 세찬 바람이 날려가기라도 하려는 듯 불어왔고 눈 앞에 보이는 연주대 가는 길은 험해 보이기만 했다.
그래도 계룡산에 비하면 여기는 새발의 피였기에 오르기로 했는데 조금 가던 큰아이 그냥 가자고 성화를 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여기서 포기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리고 또 나 자신에게 당당하게 관악산에 다녀왔노라 말하려면 이대로 갈 수가 없다.
그 옛날 대둔산에서 막 케이블카 공사를 앞두고 구름다리를 철거하려던 때 기어이 그 구름다리 건너겠다고 나섰다가 관리인에게 죽도록 야단 맞은 기억이 날 또 부추기기도 했다.
뭔가 하면 끝장을 봐야지 싶은 마음에^^
아이를 그곳에 앉히고 엄마는 다녀올테니 넌 기다리라고 하고 날듯이 바위들을 지나서 연주대로 갔다.
바위위에 서서 '야호'도 두어번 외치며 심호흡을 하는데 칼바람이 온몸을 에워 싼다.
그 상쾌함에 지쳐 있던 몸이 전율을 했지만 그 기분이야말로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연주암에 내려 갔다.그곳에서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합장 한번 하고는 올라서 서울 시내 한번 내려다 보았다.
산 능선을 따라서 붉어져 있는 단풍속에서 등산객들의 갖가지의 옷 색깔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경기도 기념물 제 20호 연주암.
기암괴석 위에 석층으로 쌓고 그 위에 지은 암자.
아무리 봐도 어찌 인간이 지었을까 싶은 그 암자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한다.
관악산에는 나도 거의 15년만에 올라와 보는 듯하다.
그 시원함에 취해 있다가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부리나케 내려섰는데 한참 가다보니 이길이 아닌 듯 했다.
계단으로 된 것이 아무래도 내 오던 길이 아니었다.
한참을 내려와서 보니 절도 보이고 지나는 사람에게 물으니 과천 내려가는 길이라 한다.
다시 깔딱고개에 도착해서 생각하니 아이가 내려갔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비가 제법 내려서 미끄러워진 돌 사이를 헤치며 내려왔는데 산 중턱에 이르러서 남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만 큰아이가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럴 수가...
물 한잔 마시고 남편에게 대책없는 여자라는 핀잔을 고스란히 들으면서 어째야 하나 싶었다.
다시 갔다 오라는 말에 "자기야, 나 다리가 구부러지지가 않아"하며 일어서는데 남편이 자신이 다녀오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나였기에 내가 가는게 나을 것 같아 통오이 하나 집어서 깨물면서 다녀오겠다 하고 올랐다.
그래도 처음 오를 땐 날아갈 듯이 가벼운 몸이었는데 두번째는 겨우 겨우 무거운 숨 토해내면서 무릎위에 손 올려가면서 간신히 올랐다.
아이를 두었었던 지점에 다다랐으나 큰아이의 모습은 뵈지 않았다.ㅠ.ㅠ
추위에 못이기고..기다림에 지친 아이는 이미 내려간 것이리라.
그 외로운 마음속 동요로 착잡한 표정이 되어 내려오는데 그리 쓸쓸한 가을일 수가 없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모두들 지쳤지만 행복해 보이는 표정인데 나만이 안타까운 표정이 되어 한발자욱씩 옮기지만 전화벨은 울리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내려오고 있는데 드디어 전화가 왔다.
태준이 만났느냐고..없노라고..아마도 저 밑 매표소에 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더니 어디쯤이냐고 해서 어디어디쯤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수중공원에서 남편과 작은 아이들을 만났고 작은 아이들은 내게 맡겨진 채로 남편이 먼저 매표소로 뛰어 내려갔다.
조금 휴식을 취하고 작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오는데 작은 아이들도 끝없이 가는 길에 끊임없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때 매표소에서 전화가 왔다..아이 잃어버리지 않으셨느냐는..이곳에 있노라는..지금 그쪽으로 내려가고 있으니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이제 가벼워진 걸음으로 내려서는데 손을 잡은 둘째아이와 함께 나뒹굴고야 말았다.
창피함보다도 먼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무릎이 깨진 듯 아팠지만 둘째를 업었다.
길가시던 어느 분이 막내의 손을 잡고 같이 내려가 주셨고 호수공원까지 우리는 그렇게 내려왔다.
거기서 인사를 하며 막내를 다시 내손을 잡고 걷게 했는데 나도 이미 완전히 지쳤다.
가도 가도 입구는 보이지 않고 아이의 짜증이 눈물이 되려 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를 데리고 산행을 하기는 무리라는걸 절감하면서 내려왔다.
매표소앞의 의자에 앉아 있던 큰아이가 반갑게 달려왔고 세 아이는 만난 기쁨에 서로 이야기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큰아이의 결정이 탁월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추위속에서 날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면 분명 감기란 녀석의 찾아옴을 막을 수 없었을테고..중간 중간 우리를 찾느라 헤매었다면 아마도 더 힘들었으리라.
산을 내려가 내처 매표소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내려갔다던 내석은 내 예상대로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그렇게 인생을 배워가는 것이지.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니까..
그러다보면 네가 힘에 부치는 어려운 일을 닥쳐도 다른이보다는 쉽게 헤쳐 나갈 수가 있을거야..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기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서서 잃은 적이 한두번인가^^
이젠 아이도 그것에 익숙해져 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다,이 철없는 엄마의 무대책스러운 행위에 말이다 ㅎㅎ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잠시의 시간을 보내곤 올 때와 같이 마을버스를 타는데 작은 아이들은 택시 타자고 보챈다.
그 무렵 막내는 남편의 품에서 골아 떨어져서 코까지 골았다.
지하철을 타고 신용산에 와서 차를 태우니 그제야 살겠다는 듯한 표정들이다.
집에 와서야 확인을 하니 양 무릎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대로 큰대자로 누워버릴 수 밖에 없었는데 남편이 한마디 한다.
"지리산 갔다와서 누웠다고 하면 모르지만 관악산 다녀와서 누웠다면 사람들이 다 웃는다"고.
맞는 말이긴 했지만 두번을 산에 올랐다 내려왔으니 지리산에 다녀온 것과 맞먹지 않겠느냐는게 내 대답이었다.
오래 누워 있지도 못하고 가게로 나가봐야했는데 그저 오늘 같은 날은 손님도 없었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가게를 나가서 움직이니까...그리고 손님이 오셔서 바삐 움직이니까 오히려 몸이 훨 개운해졌다.
차츰 기력도 돌아오고 다리도 움직이기가 많이 나아졌다.
오히려 평일보다도 더 늦게 일을 마치게 되었다.
그럼으로 해서 남편과 함께 후라이드치킨을 마주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설중매 딱 한잔으로 피로가 풀려지길 기원하면서^^
집에 오니 이미 에너지가 재충전되었는지 둘째와 막내는 깨어 있다.
얼른 다시 재우고...나도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내 여유(?)는 내게 속삭이고 있다.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던 내게 하나님은 두번이나 산에 오르는 선물을 내게 주신 것일 게라고-
참..행복했으면서도 힘들었던 날로 기억되겠지,벼르던 오늘의 산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