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복지관에서 아이를 돌보아 주시는 선생님과 같이 점심을 함께 하였다. (복지관에서 배우는게 있어서 월수금 삼일동안 작은 아이를 맡겨둔다. 오전시간 잠깐) 그분이야 월급받고 아이들 돌보신다지만 맡기는 난 수강료만 내고 배우는 터라 덤으로 주어진 아이를 돌보아 주는것에 항상 고마운맘을 갖고 있었고 혼자 집에서 점심을 드셔야 한다는 말씀에 고맙다는 인사도 할겸 같이하게된 자리였다. 쉰정도 되어보이는 그분 서로 안지 한달정도 되다보니 속내는 서로 모르지만 아이일로 많은 이야기를 해온터라 그래도 스스럼은 없는 사이였다. 둘? 준이가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시며 그러신다. "준이엄만 참 좋겠어 저렇게 이쁜 자식이 있어서 " 꼭 그말씀은 자기한텐 자식이 없단 소리로 들려 다소 당황했다. 평소의 말씀으로 짐작컨데 회사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는걸로 알고 있었기 ??문이다. 그렇다고 무슨말씀이냐고 섣불리 물을수도 없어 그냥 냉면 면발만 세고 있는데 "나한테도 아들이 있었어 지금은 잃었지만......." 하신다. 그말씀끝에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이셨다. "벌써 10년이 넘었네" 그때까지도 난 아무말도 물을수가 없었다. "그렇더라 이세상에서 나밖에 없었던 엄마두 잃어보구 평생 함께 할것 같았던 남편도 잃어보구 그랬는데 .... 자식이라서 포기가 안되더라구 이젠 늦었다는 의사들한테 메달려 이병원 저병원 다 찾아다녀보구 마지막 의지처라는 하느님께 메달려 보구 그럴때마다 아이는 더 고통 스러워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포기가 안되더라" "........................." "엄마 돌아가실땐 그랬어 평생 나만보구 살아보신 분인데도 어차피 가실거면 고통이나 덜받다 가시게 해달라구 기도하게되더라 그리구 남편갈땐 나와 자식들만 남겨지게 되는것이 두렵구 아프다구 나나 자식들 힘들게 하는게 어떤땐 밉기두 해서 못된마음도 먹게 되구 그랬는데 자식은 자식은 끝까지 포기가 안되더라구 실낮같은 희망이라두 보이면 메달리구 싶구 꼭 살수 있을것 같구 마지막 눈감는 그 순간까지 포기가 안되더라구 지금 나 많이 원망할지도 몰라 내 마음끈 놓지 못해서 절 더 힘들게 했다구......." 이미 점심먹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반쯤 먹다만 냉면발을 준이 무릅에 앉혀놓고 조금씩 먹이면서 차마 내입으로 더이상 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씩씩하셔서 다행이에요" 처음으로 꺼낸 나의 말이었다. 이말을 하기까지 난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분의 슬픔에 섣부른 위로의 말은 오히여 어줍잖아 보일것도 같구 만약 내 무룹위의 준이를 잃는다면 하는 어이없는 생각듬에 잠이 몸서리 도 치면서 .... "그럼 벌써 10년이 넘었는걸" 하시며 쓴웃음을 지으신다. 그분에겐 남매가 있었다고 한다. 유달리 운동을 좋아하던 아들이 14살 되던해 수업중에 쓰러져 황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나온 진단은 뇌종양으로 이미 손을 쓸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고 한다. 의사들이 이미 수술로도 늦었다고 그냥 먹구 싶어하는거나 많이 해 먹이라는 말에 도저히 믿기지 않아 연대,고대,서울대학 병원으로 찾아다녔고 서울대학병원에서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을 여러차례 듣고서야 마지막 의지처는 하느님밖에 없단 생가가에 할렐루야 기도원에 들어가서 약 칠개월을 아들과 함께 보내다가 결국 그곳에서 아들과 영영 이별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산에 묻고 남편은 기억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었다며 여기가 왜이렇게 아픈가 몰라 하시며 가슴을 주먹으로 치셨다. "그래도 남은평생 웃을일 없을것 같았는데 요즘은 준이 때문에 웃어 " 하셨다. 돌아오면서 예전의 일 하나가 떠올랐다. 결혼한해 추석 명절날 집에서 음식을 하면서 작은 어머님께서 동네 혼자사시는 이웃분이 마흔의 자식을 암으로 잃었다며 그맘 오죽하겠냐고 하셨었다. 그때 형님이 아내가 자식들하구 살려면 그게 더 기가 막히고 슬프지 노인네 슬픔에 비하겠냐구 했었다. 그때 작은어머니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때만 해 도 나도 형님과 생각이 비슷하였기에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그 애틋함이 더할수록 내가 나이먹고 ?k어진다고 자식이 결혼해서 세대를 일구었다고 이마음이 변하지는 않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책임져야할 가족이 생겨 그 책임을 다하려고 애쓰는 자식을 보는것에 애틋함과 측은지심이 더해지지 않을까 그랬을때 만약 그랬을때 자식을 먼저 앞세운다면 그보다 더한 세상의 슬픔이 어디있으랴 그분과 함께 한 이 시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큰 슬픔을 보았다. 그리구 작은것에 슬프다구 함부로 해서도 안되겠다는 겸손을 조금은 안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