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흐느끼지 않고 노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나는 어릴 적 꼭 단풍이 든 나뭇잎을 주어 책갈피에 끼워두곤 했다.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이고 고결한 분위기를 남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교과서에 낙엽을 꽂아두고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그것을 살짝 보이도록 해 놓곤 했다.가을을 느끼는 소녀로 인정받고 싶었고, 가을은 나를 분위기있는 소녀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계절이었다.청명한 가을 하늘, 나무마다 색색들이 물이 들다. 가을은 이렇게 낭만과 아름다움으로 시작한다.단풍이 절반쯤 들 때 바람은 차가와지고 하나둘 잎들이 땅으로 추락한다. 나뭇가지에서 잎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어 가면 나는 그 잎들을 찾아 밑으로 땅으로 헤멘다. 낙엽은 땅에 머물고 나의 마음도 그 속에 머물며 흐느낀다. 낭만과 허무는 아마 나에게 있어서는 똑같은 말이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지금은 지은이가 생각나지 않은지 오래지만 "생의 한 가운데" 를 가을에 애독했다. 그 책속엔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인생의 레파토리가 있었다.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영원한 사랑, 절망에서 오는 생의 상실, 전쟁, 평화에 대한 투지, 새로운 생의 대한 도전,이루말할 수 없는 삶의 자국들이 책 곳곳에 찍혀 있었다. 고등학교시절 난 세번의 가을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그 책과 함께였다.
지금은 그 책을 안본지 꽤 오래 되었다. 아마 친정 책장에 고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책을 두고 삶을 흐느끼지 않는다. 가을이면 항상 그책을 보며 무던히도 삶에 대해 파고들고 파고들며 시간을 흐느끼며 보낸 던 것 같다. 그 책속의 주인공이 나인 것처럼
하지만 이젠 난 가을을 흐느끼며 가을의 애잔함에 빠져들진 않는다. 일부러 남에게 보이기 의해 낙엽을 줍지도 않는다. 가을을 닮은 소녀가 되고 싶어서 발버둥치지 않는다. 난 이제 가을을 노래한다. 가을에는 좀 더 많은 노래을 부르고 싶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 전쟁과 기아에 고통받고 있는 세계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를 말이다. 이젠 가을 속으로 당당하게 나가 가을의 냄새,가을의 빛깔, 가을의 푸르름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나"를 위해 가지고 싶다.
낭만을 잃어버린 아줌마가 아니라 낭만과 허무를 동일시하지 않는 진정한 가을의 여자가 되어 노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