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나이 마흔을 넘어서
이른 새벽 주섬주섬 일어나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한다.
어제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터라 눈동자가 뻑뻑하고 음성도 잠겼지만,
이미 약속을 하였기에 부지런을 떨어야만 한다.
침실에 잠들어 있는 남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우르릉 우르릉' 소리를 내며
드라이로 머리도 말리고 옷장문을 열었다 닫았다 오만가지 소리들을 불러 모은다.
대충 화장을 마치고서야 작은아들을 흔들어서 1차 깨워보고
주방으로 달려가 가스랜지에 불을 당겨 놓고, 하던 샤도우를 마무리 해본다.
작은놈을 흔들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이번엔 공갈까지 동원하며
무슨 큰일이 난양 호들갑을 떠는 아침.
진한 꿀물 한잔을 억지로 마시게한 작은놈은 즈이 형차에 실려 보냈다.
후다닥 식탁에 아침상을 보아 놓고 뜸들인 밥을 밥통에 퍼 담고,
어젯밤 챙겨 놓은 가방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남편에게
어리광을 잠시 부리며 줄행랑을 놓았다.
이미 도착해 있는 우리의 조직원들 일곱명..(체육관 아즈매들)
지난 봄에 가려던 정선행을 못 간탓에 1년만의 기차여행에 대한 흥분이 밀려든다.
저마다 가방에 싸 짊어 가지고 온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필두로
온갖 육두문자를 읊어가며 우리의 아즈매들은 기차에 올랐다.
일명 음악칸이라 이름 지어진 우리들의 예약된 자리에 짐을 풀고..
인원을 점검 하는가 싶더니 이벤트 회사 직원들의 기막힌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기차는 캬바레로 변했다.
이박사 매들리서 부터 듣도보도 못한 음악까지 짬뽕하여 틀어 재끼는 이른바 '음악칸~!'
풀어 놓으니 증말이지 잘도 놀더군.
나를 포함한 수십명의 아즈매들은 그야말로 오늘만 살고
안 살 기세로 온몸을 풀어 헤친다.
사실 말이지 난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아줌마표 관광춤을
혐오 한 사람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우예 그리 언니들의 비위를 잘 맞추며 놀아 부치던지 원.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하여튼 기차안의 남자는 딱 두 명.
것도 50이 훨씬 넘은듯 보이는 우리집에도 있는 그런 아자씨 두 분.
그 양반들은 이미 남자 이기를 포기 하였다.
이리 불려 다니고 저리 불려 다니며 인기 캡이었으며,
과일도 아닌것이 과일인척 한다는 육두문자가 무색할 지경으로
남자대우를 톡톡히 받아냈다.
(아마도 그 아자씨들은 돌아가서 자랑을 늘어지게 하리라..
자기들의 인기가 울트라 나이스 켑??짱 이었노라고...ㅋㅋ)
두어시간여를 달려간 끝에 강경에 도착했다.
저마다 온갖 알콜들로 샤워한 탓에 휘청거리며 볼만한 아즈매들.
버스로 바꿔 탄 우리들은 관촉사로 향 하고.
나는 원치 않는 언니들의 기쁨조를 도맡는 통에 녹초가 되어
버스 뒷좌석에 늘어져 버렸다.
한참을 가 보니 관촉사라 이름하는 절에 이르렀고,
언젠가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왔었다는 은진미륵이 초췌한 모습으로
산밑에 방치되다 시피 서 있었다.
손상된 모습이 역력 하였지만 불자들의 절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산에서만 맛 볼수 있는 약수 한 바가지 들이키고는 터덜터덜 내려 오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마른 하늘에 주먹만한 소나기가 후두둑 거리며
아직 여린 단풍들을 혼내키고..
메~롱 하며 달아나듯 아즈메들은 버스로 스며 들었다.
다음 코스로는 강경에 위치 하고 있다는 탑정호(저수지).
우리가 탄 버스는 제일 끝으로 5호차 였는데,
내리고 보니 저만치서 왁자지껄 난리도 아니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kbs에서 리포터가 나와 강경 젖갈축제에 온
주부들을 취제하며 노래도 시키고 소감도 묻는등 이색풍경을 연출하고 있는게 아닌가.
빨간색 위 아래를 입은 어떤 아즈매의 용감무쌍한 행동에 우리들은 박수를 보냈다.
(어쩜 모자까지 빨강일까--?? 나이들면 다 빨강이 좋아질까--??)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며 --앗싸아 해가며 난리 부르스다.
저수지의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문득, 방금 전
버스 지붕을 부서져라 휘 갈기던 소나기가 궁금했다.
방긋 웃는 햇살과 더불어 잠깐의 데이트를 즐겼다.
한참을 버스에 휘청거렸다.
여전히 나는 뒷 좌석을 고집하며 길게 뻗고 누웠는데,
일부 아즈매들은 버스도 마다 않고 열심히 흔들어 대나보다.
(에이그으, 기운이 장사여 ...나는 갈때를 생각하여 에너지를 충전하련다.)
드디어 강경 젖갈축제장에 왔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축제없는 곳이 없는 요즘이련만.
젖갈축제는 말로만 들었지 처음 이었고, 흔히들 축제장에 널려있는 향토음식이며
젖갈 시음장에 체험장까지 제법 무늬만 축제장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체험이나 시음장은 물론 돈을 내야만 먹어 볼 수 있었다.
나름대로 꾸민다고 열심히 꾸몄건만 수도권에서 하는
조그마한 축제에 비한다면 너무나 허술한 축제 마당이었다.
어제 비가 온 탓에 장터에는 걷기 힘들 정도로 질퍽했고
여기저기 흩어진 장터며, 조잡한 물건들로 이맛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점심은 먹어야 겠고, 보아하니 맛도 없어 보이고
을씨년 스러운게 영 내키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운영 하는 국수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국수에 해물파전에 도토리묵에 막걸리까지 곁들여 그럭저럭 값 싼 점심을 때웠다.
생각보다 바가지 요금은 없었고 한 언니는 뜬금없이 고향 친구를 만나
반가움에 얼싸안고 뛰는 등 기이한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점심을 하고는 옥녀봉으로 출발.
나름대로 신경써서 급작히 만든듯한 아트형의 다리위를 건너며 시진한방 찰칵 눌르고
이동용 화장실의 깨끗함에 다시 한번 놀라며 옥녀봉에 올랐다.
옥녀라는 닉네임에 사뭇 궁금증을 갖고 올라본 옥녀봉.
그곳은 별스럽게 높지도 않았으며 특별한 기암괴석이 들어 앉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1900몇년도에 강부자랑 누구랑 일일드라마를 찍은 곳이라는
안내판만이 입구에 턱하고 버티고 있었고,
오래된 고목이 뱀이 꾀리를 튼 모양을 하고는 옥녀를 연상시켜 주었다.
어느 누구도 친절하고 상세한 축제의 이모저모를
안내하는 사람은 일절 없었고,
주요행사 구성이라는 팜플렛이 무색할 정도로 눈길을 끄는 곳이 별반 없었다.
그 전날 뗏목타기 하다가 인사사고가 났다는 뉴스 보도 때문인지
포구에는 쓸쓸한 오리모양의 배들만 줄지어 떠 있었고,
사람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특설 무대에서는
어느곳이나 빠지지 않는 노래자랑인지 땐스 경연인지가
스피커가 터질 정도로 악을 쓰고 있었다.
피곤한 다리들을 끌며 오다보니 "부대행사"로 '갱갱이별곡마당놀이'가
시끌벅적하게 치뤄지고 있었는데 관중의 많고 적음이 흥을 좌지우지 하는 것인고로
당췌 무슨 놀인지 귀에 쏙 들어오지를 않았다.
여기서는 더 큰 소리로 엿장수가 목청을 높이고..
저기서는 음식가게에서 더 크디큰 스피커로 악을 쓰고..
아이들을 붙잡는 놀이기구에서 또 소리소리 지르며 악을 쓴다.
젖갈 상회에서는 예산에 없던 갖가지 젖갈들을 사느라 홀쭉해진
지갑을 대신해 양팔이 부러질 정도의 짐 꾸러미들을 잔뜩 든
아즈매들의 표정이 볼 만했다.
틈새를 이용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젖갈을 너무 많이 사서 당신이 마중 나와야 겠어요.
팔이 부러질 것만 같어"
돌아오는 기차안은 그야말로 난리 북세통이요 아수라장이다.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이야 저이야..' 하는 회심곡의 노랫가락이 생각날 정도로
거의 죽기 아니면 까무러 치기로 잘도 노신다.
연세가 66세라는 어떤 아주머님은 우리 친정 엄마(65세)보다 더 젊게 노시고
우리조직원들은 말할 것 없이 잘도 돌아친다.
지루박이면 지루박, 차차차면 차차차, 고고면 고고, 관광춤이면 관광춤.
하여튼 기차안인지 캬바레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
하기사 남자들의 놀이문화는 술이며 이런저런 놀이가 있다지만.
어디 여자들. 그것도 결혼한 아즈매들이 마음놓고 놀만한 데가 있더냐.
'에라이 모르겠다. 나도 까무라쳐 보자.' 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기쁨조가 기꺼이 되어 주었다.
수원역쯤에 와서야 휴대폰을 점검해보니 혹시가 역시인 우리 남편.
그새 송내역에 나와서 전화를 수십번이나 하고 또 하고
승질을 있는대로 내면서 울화통을 터트린다.
행여 내가 무슨 묻지마 관광이라도 갔을까봐 저 난리일까---?
차라리 잘 되었다 싶어 언니들에게 우리남편이 집까지 다들 모셔다
드릴 터이니 다들 집에 전화하시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는
송내역에 내려보니 그새 빙그레 웃으며 남편이 반긴다.
사는 아파트가 조금씩 다르니 각각 가장 가까운 집 근처에 내려 드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그런다.
"아니, 저렇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랑 놀았어 여적지??"
언니들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수도없이 이야기 한 터였지만 실제로 보고나니
남편은 내심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왜 그렇게 내가 누구랑 노는지가 궁금한 것인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