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그 칼럼 제목 어느 게 좋니? 가짜 죽이기랑 적이냐 동지냐 중에서."
"난 말야, 남편에게 특별히 적이니 하는 말이 별로 실감나게 와 닿지 않아.
얼마나 과분한 사람인데. 내가 하는 거 보다 정말 잘해주고......"
갑자기 입이 꾹 다물어져버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감 할 거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전혀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치부를 들킨 것처럼.
"그리고 가짜라는 것도 말이야. 난 나이들 수록 이제 인척하고 사는 게 싫어. 그냥 자연스럽게 내 모습대로 사는 게 좋아."
참 많이도 남을 의식하고 자신을 감추며 살았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서 참 무한히 다행이다 하면서도
그런 행복한 모습으로 바뀔 수 있었던 그녀의 삶이 부러웠다.
그녀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이 새삼 위대해 보였다.
솔직함은 언제나 내 몫으로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런 난 제일 부러워하던 친구였는데 참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들켜버린 것 같은 나의 속내에 눈을 돌리기 창피하였다.
10년.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하지만 내 몫의 행복을 빼앗겨버린 듯한 이상한 억울함이 밀려들었다.
언젠가 부부간엔 사랑보다 존경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참 고리타분한 단어란 생각이 들었었다.
존경하면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오르니까
어머님은 아버지를 무척 존경하셨다.
항상 당신의 허점 투성이인 성격에 비해 틈이라곤 없는 아버지를 하늘처럼 여기셨다.
그 덕에 우린 덩달아 아버지가 당연히 하늘이었고
그런 어머니께 냉대하시는 아버지의 무시가 정말 싫었었다.
아니 무시하는 아버지보다 무시당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어머님의 태도가 너무 싫어
그렇게는 안 살 거라고 다짐 또 다짐했었다.
은연 중에 그런 나의 의식이 남편을 동반자보다는 경쟁자로 여기도록 만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존경해 줄 부분이 너무도 많은 사람인데
그러한 행동이 마치 나의 영역을 빼앗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위기 의식을 느끼며 살았는 것 같다.
오늘은 친구에게 편지를 써야할 것 같다.
그 한마디가 준 당혹감에 정신 못 차리고 옹졸해진 나의 좁은 속을 이해하라고
그리고 오늘은 남편에게 꼭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정말정말 존경해요. 당신의 몫을 버리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쓴 나날들,
그리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