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엔...
약간의 늦잠에다 한주간의 쌓인 피로를 기대고 싶어진다.
그리고는 느긋한 커피한잔과 음악 몇곡으로 마음의 찌꺼기를 훌훌 털어내는 일과,
화초에 물을 주며 도란도란 속삭이는 나만의 언어...
그런 것들로 그 하루를 위로받고, 새로운 힘을 얻고 싶어지는 날이다.
그런데 어제는 ...
서울 사시는 시이모님의 딸래미 결혼식이 있는 날이라서
시부모님들께서 함께 갔으면 하시길래 모처럼만의 휴일 나들이를 하기로 한 날!!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며칠전부터 잔뜩 부풀어 있는 듯 했다.
부모님들과는 서로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기에 서울에서 만나기로 하고는
바쁜 남편 제켜두고 아이들 손 잡은 채 아침 기차에 오른다.
서울에서 5년 동안 살았던 이 며느리 길 못 찾아 올세라
서울역까지 마중나오신 시아버님...
서울역 광장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제 할아버지를 금새도 찾아내던 작은 아이 ...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듯 얼싸 안고 좋아라 난리다.
하늘은 높고 바람 선선한 좋은 계절에 곱게 분단장한 신부의 황홀한 자태에
나도 크면 저렇게 시집 가는 거냐며 목 길게 빼고 쳐다보는 딸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에 나도 몰래 웃음 짓는다.
워낙 오랜만의 만남이라 예식이 끝나고
시이모님댁에 들러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리라 마음먹었기에 저녁에 내려오는 기차를 예매하였는데
시아버님께선 손녀들 데리고 고궁 나들이나 하자고 하신다.
가까운 경복궁에 들러서 아이들 손잡고 하릴없이 걸어도 보고,
국립박물관에 들러서 구경을 한다.
예정에 없던 코스라 구두 신고서 걸어다니자니 발바닥이 적잖이 아파온다.
그래도 계속 앞장서서 다니시는 두분 앞에서
젊은 며느리는 다리 아프단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그리고도 기차시간 맞추려면 시간이 좀 남아서 백화점 쇼핑을 한다.
할머니 손잡고 청바지 하나씩 얻어 입은 아이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재잘재잘 조잘조잘 쉴새 없이 말하는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팔장을 하나씩 나누어 끼니
남편과 동행하지 않은 나만 홀가분하다.
아이들의 옷을 샀으니
이번엔 어머님의 아침운동때 입으실 츄리닝 한벌을 사기로 한다.
드디어 내려오는 기차에 오르니 할머니, 할아버지 양 옆 자리에 앉은 두 딸아이
부지런히 먹어대고, 계속하여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하는건지
이번에도 엄마만 혼자 건너 자리에 안아 그쪽을 쳐다 보느라 목이 다 뻐근하다.
아이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
갖고 있던 언어능력을 총 동원하여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게 만든다.
아이들의 웃음 사이 사이로 시어머니와 난 엄마와 딸처럼 그리 앉아서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주된 내용은 거의가 남편에 관한 이야기 ...
아들 고생한다고 짠해 하시는 그분의 걱정에 며느리도 다 알고 있다는 듯
한껏 동감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 남편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나도 모르게 골라온 가을분위기 물씬나는 체크무늬 남방셔츠 하나와 바지 한장이
쇼핑백에 담긴채 열차에 실려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봉투 한켠에다 나도 남편이 사주는 옷 좀 입어보고 싶다며
슬그머니 이는 내 마음을 거기에다 담아 놓는다.
어둠내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면서
나도 몰래 눈가에 눈물 어리는 것은
그래도 아직은 두분이 이만치 건강하셔서 아이들과 함께 하실 수 있는 그 시간이
아주 많이 고맙고 감사한 탓일테지 ...
앞으로도 오래도록 두분의 건강을 마음으로 빌어보며
서대전역에서 아이들과 난 내린다.
두분은 강경역까지 가셔야 하니
밖에서 저녁 드시고, 택시 타고 가시라 약간의 돈을 드리니
한사코 손사래 치시며 아이들에게 저녁값을 주신다 따라 나오신다.
기어이 말리는 며느리, 손주녀석들 뒤로 하고 열차는 떠난다.
오래도록 건강하시라는 나의 염원을 기적소리에 실어 함께 보낸다.
하루동안의 짧은 나들이였지만
아이들에게는 값진 추억으로 ...
내게는 소중한 가족애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그 어느 주말보다도 소중한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