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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항주이야기(34)중국의 농촌을 다녀와서


BY huekim 2002-10-09

절강성 건덕 수창을 10월 국경일 연휴를 맞아서 2박 3일간 아이들과 같이 다녀왔다.
항주 서부 시외버스장류장에서 출발하여 짐짝 취급을 받으며 2시간 40분간 버스를 타고 마침내 수창에 도착하였다. 중국에서는 버스에 정원 초과는 늘 있는 일지만, 국경일 연휴가 되니 버스를 타려는 사람은 많고 자리는 제한이 되어 있으니……. 버스표를 받는 아줌마가 얼마나 재바르고 억센지 순식간에 이리저리 뒤섞여 있던 승객을 맨 뒤에서부터 착착 쌓아 오면서 정리정돈을 하여 버렸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탄 버스는 대형 버스도 아닌 중형 버스인데 30여명이 초과 승차하였다.
버스안의 공기는 다른 사람들의 역겨운 몸에서 나는 냄새와 승차권을 사지 않고 탄 승객들에게 요금을 받는 과정에서 좌석도 없이 불편하게 가는 데 왜 요금이 싸지 않으냐는 시비가 일어나 시끌법석하다가 조용할 즈음에 옆에 앉아 있던 아주마가 구토를 하기 시작하면서 하품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하품하고 싶은 것처럼 나도 따라서 속이 불편하여 혼이 났다. 이렇게 수창에 마침내 내릴 수 있었다.
수창은 조그마한 읍 소재지로, 시외버스정류장을 나서니 과일 파는 난전가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빨간 커버를 둘러쓴 삼륜차 등이 눈에 들어왔다. 삼륜차를 1원에 타고 내려서 다시 1인당 요금 2.5원하는 봉고차로 갈아타고 친구의 집이 있는 童家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창에서 막 출발하여 15분 정도까지는 비포장도로에 흙먼지와 시멘트 같은 뿌연 먼지로 거리의 가로수와 집 등이 모두 회색빛이었다. 차의 창문을 닫았는데도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심각하였다. 이런 길을 지나니 비로서 시골의 분위기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을 볼 수 있었다.
작년에 집집마다 50원씩 내고 나라에서 보조하여 새로 닦아서 만든 꼬불꼬불한 좁은 아스팔트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막 추수를 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녹차 한잔 마시며 시골 공기마시며 휴식을 취하였다.
비교적 지대가 높은 지역이어서 평지에는 마을을 형성하여 사람들이 살고 있고 주변 평지에는 논이 펼쳐져 있으며 산에는 귤 밭, 밤나무, 감나무, 대나무와 각종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주변의 산에 대나무와 나무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대부분의 농기구나 소쿠리 등은 대나무와 나무로 만들어서 쓰고 있었다. 손으로 짠 큰 대소쿠리, 반찬을 덮을 수 있는 덮개 등은 수공이 아름다워 집안 장식 용품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소장 가치도 있게 보였다.
오후에는 마을을 이곳저곳 구경하면서 가다보니 윗동네까지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도 농촌은 대부분이 씨족을 이루어 친. 인척관계로 형성되어서 살고 있었다. 윗동네에 가니 친구의 동생네, 친척들이 살고 있어서 집에 들러서 목도 축이고 한창 탈곡중인 장면 사진도 찍고 하였다. 집집마다 재래식 탈곡기로 벼를 탈곡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사람이 허리를 숙여 낫으로 일일이 나락을 베고 탈곡기로 타작을 하고 있었다. 타작한 나락은 마당에 펼쳐서 말리고 저녁이면 거두어들이면서 한창 바빴다
저수지 주변에 자라고 있는 사람 키보다 2. 3배 큰 일종의 갈대종류인 풀이 병풍처럼 저수지 주변에 펼쳐져 있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이 풀의 줄기를 뽑아서 불면 피리소리가 난다며 한국에서 온 우리 아이들에게 불어서 시범을 보여 주었다. 여자 아이들은 부채모양의 잎이 달린 줄기는 다시 잎을 잘게 나누어서 왕이나 여왕 옆에 서있는 시녀들이 들고 있는 아름다운 부채 모양으로 만들어서 가지고 놀았다. 남자 아이들은 줄기 끝에 매달려 있는 붓 모양의 갈대를 가지고 놀았다.
오래된 중국 농촌의 가옥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으로 마을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 마을에는 이전의 가옥 형태는 지금은 거의 없고, 1. 2. 3층 등 시멘트로 쌓아올린 콘크리트 집이대부분이었다. 단층 집 보다는 2. 3층으로 지은 집이 대부분으로 집이 상당히 넓었다. 1층에는 부엌、농기구、곡식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거나 돼지. 닭. 오리 등을 키우는 우리로 사용하고 2. 3층은 주거 공간으로 쓰고 있었다.
집을 새로 지으면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보니 집의 형태와 골조만 갖춘 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외관은 그럴듯하지만 집 안에는 시멘트 그대로 이거나 흰 횟가루만 칠한 정도이다. 집안에는 전기시설만하고 수도시설과 화장실 시설이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화장실은 마통을 집안에 두고서 대. 소변을 보고 모아서 밖에 있는 변소에 갖다 버린다. 물은 서너 개의 큰 물 단지에 물을 담아 두고서 바가지로 퍼서 쓰며 폐수는 집 밖으로 버려 버리면 그만이다.
돼지. 닭. 오리 우리 바로 옆 같은 공간 안에 큰 가마솥이 부뚜막에 걸려있고, 가스레인지, 물 독안이 등이 있어 가축우리와 부엌이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농촌과는 달리 울타리를 쳐둔 마당이라는 공간이 없는 것도 특이하였다. 그러다 보니 낮에는 닭. 오리. 개. 고양이 등의 가축들이 밖에서 집안으로 뛰어다니며 왔다 갔다 한다. 가축은 집안. 밖으로 왔다 갔다 하며 . 1층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에도 식탁 밑으로 주위를 자연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산보 다니듯이 다니며, 사람들은 게의 하지 않고 계속해서 밥을 먹거나 하던 일을 한다. 사람과 가축이 같이 집안 생활을 하면서 자연 그대로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오래된 집은 67년 된 가옥이 한 집 있었다. 보기에는 100년은 훨씬 넘겼을 것 같았지만 “家讀耕” 이라는 이름을 가진 집으로 그저 평범한 나무 대문에 양쪽 대귀를 써서 붙여둔 글귀가 첫눈에 띄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중국 가옥형태의 특이한 형태를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지붕 위에 직사각형으로 공간을 내어서 바로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집안의 채광은 이곳을 통하여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침침한 편이었다. 그리고 지붕에 낸 그 직사각형 크기로 바로 밑에 땅면보다는 약간 낮게 땅을 파 내려서 비가 오면 비가 그 안으로 떨어질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이끼도 끼어있는 것이 보였다.
전체적인 가옥의 형태는 그저 평범한 집이였으며 기둥, 서가래, 난간 등에 조각이 된 곳도 간혹 보였다. 조각 수공은 그다지 정교한 편은 못 되며, 1층에 사람이 주거하고 2.3층은 나무로 칸막이만 되어 있어서 물건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만 이용하고 있었다. 방인데도 바닥은 흙바닥 그대로 쓰고 있었고 침대 하나에 나무로 만든 함, 상자 등이 가구의 전부였다.
집집마다 가스레인지가 있지만 아직까지 쇠솥을 사용하고 있었다. 쇠솥은 우리나라의 것과 유사한 형태이지만 부뚜막 설계 형태와 기능으로 보아서 우리나라의 쇠솥보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것 같았다. 불을 떼는 아궁이도 바닥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쇠솥 바로 밑에 불길이 닿을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가마 공간도 상당히 작아서 나무 잎이나 작은 나무 가지 등으로도 높은 화력을 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쇠솥 바로 옆에 물을 3~4리터 정도는 담을 수 있는 통이 있어서 쇠솥이 뜨거워지면서 같이 물을 끓일 수 있고 끓여진 물은 설치된 수도꼭지로 바로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들은 쇠솥에 밥을 하고, 반찬을 볶고 국을 끓일 뿐만 아니라 설것이도 쇠솥 안에서 하였다. 쇠솥에서 조리와 설것이까지 함께 마치는 것이었다. 조리하고 난 쇠솥은 아직까지 뜨거우니 기름기 있는 그릇 등을 씻기에는 아주 편리하였다. 그리고 수세미로 그릇을 씻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를 잘게 내어서 뭉친 15㎝ 길이의 대나무 솔로 씻으니 손이 뜨거운 물속에 닿지 않아도 되어 손이 데일 염려도 없었다.
중국의 남자들은 가정적으로 밥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 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외국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중국의 농촌 남자들은 도시 남자들과 달리 전통적인 남아대장부 사상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농사일 이외에는 집안일은 관여하지 않고 포커나 마작 등의 오락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에 비해서 여자들은 농사일뿐만 아니라 집안 일, 아이 양육까지 모두 맡아서 일을 하니 아주 고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시골이다 보니 교통이 상당히 불편하다. 그러다 보니 읍내로 가기 위해서는 배차 시간이 정해진 교통편이 없으니 길을 가다가 봉고버스, 트럭 등의 영업차가 보이면 세워서 타고 나간다. 트럭이 버스처럼 짐도 실어 나르고 사람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읍내에 가져가 팔 농작물도 많으니 이곳 사정에는 적합한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짐을 싣는 차 지붕도 없는 트럭에 사람이 서서 가니 안전이 걱정이 되었다.
중국의 농촌은 전기시설은 대부분이 되어 있었지만 아직까지 교육 환경과 문화시설뿐만 아니라 밥 먹고 살기에도 힘이 들 정도로 여러 가지로 굉장히 열악한 곳이 많다. 그래서 도시로 일하러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중국 전체적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