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3월 우린 동갑네기 말띠로 결혼을 하였다
20살에 만나 친구로 시작해서 한집에 살게 된 것이다
부모님 도움없이 살아야 했기에 대도록 혼수는 자취때 사용하던 물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최대한으로 절약했다.
그렇다고 시댁의 예단은 빠뜨리지 않고 보냈다
그리고 현금으로 가져와 방을 얻는데 보태고....
남편의 봉금이 적어 몇달간 공장이라는 곳을 다니기는 했지만
큰아기가 생겨 그만 두었고.
다들 최고 좋은 것을 아기한테 먹있때
난 제일 저렴한 우유와 분유를 먹이며 아이를 키웠다.
지금의 보금자리를 분양받아 분양대금 납부또한 힘들어
최대한으로 절약하며 생활했다.
둘째아주버님이 무이자로 천만원을 빌려주셔서 무사히 입주하였다
이것이 가장큰 도움이였다. 후에 이자 드리지못해 죄송함을 세탁기
바꾸어야 한다기에 우리가 바꾸어 드렸다.
전세 살때 주인집을 잘 만난것도 복이였다.
오년을 한집에서 세을 올리지 않고 살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곳에 입주하여 둘째아이가 태어 낳고
큰아이는 딸 9살 둘째아이는 4살 아들
고급 옷을 입히지 않았고 좋은 것만 골라 먹이지 않았고
남들이 좋은 교재에 좋은 유치원에 보낼때 우리아이는
학원에 2년 다니고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그런 아이는 학교생활을 잘 해서 반장이 되기도 했다
남편이 자기일을 시작해 생활비도 융자해서 살아야 했기에
힘들고 슬퍼지만....
남편의 수입이 세번째로 어제 들어 왔다.
직장생활때도 연봉이 삼천이여서 적은 돈은 아니였는데
남편은 내 통장에 직장다닐때 보다도 많은 돈을 입금시켜 주었다.
지금의 여유로움을 영원히 유지하고 싶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아끼며 살아야 하지만...
양가 부모님에게 매달 용돈을 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
그동안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친정부모님에게도 받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드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겨 너무 좋다
시어머님에게만 용돈을 드렸다
남편이 친정도 보내드리란다.
칠순이 넘는 연세에 농사를 지어 자식들에게 보내는 낙으로
힘들어도 농사를 접지 못하시는데....
추워지는 날씨에 보일러 기름이라도 넣을 수있는
돈을 보낼수 있어 넘 좋다.
남편의 일이 잘 되어 양가 부모님이 살아계실때까지
걱정없이 생활비를 보태게 되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