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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33

딸 이야기-2


BY azurefall 2002-09-28

2. 축하 이벤트!

주연이가 벼슬한 것을 알려온 뒤 곧 바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히딩크의 자서전 <마이 웨이> 읽었어? 안 읽었으면 사주려고..."

"얘, 주연이 오늘 초경했어. 금방 전화 왔거든... 너 주연이에게 메일 보내고 그 책 선물하렴. 난 모르는 척 하고 있을 테니..."

"어, 그래... 아이구 어린 것이 벌써... 그럼 내가 주연이 이름으로 선물 보낼게. 잘 됐네. 제목도 마이 웨이... 이제 저도 제 길을 가야 할 테니...히히"

제 이모랑 선물 얘기를 하고 난 뒤 그 선물 건에 대해선 침묵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연이의 이 기쁜 '사건'을 또 알릴 데가 없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맞아, 새 언니.

참 좋은 나의 올케.
고3 담임이라 토, 일요일도 없이 늘 바쁘게 다니지만 따뜻하고 정이 많은 이지적인 사람.


언니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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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잘 지내지?
훌륭한 선생님으로, 현명한 아내로, 좋은 어머니로 수퍼 우먼인 언니를 존경해.

우리 집에 빅뉴스가 있어!
주연이가 초경을 시작했어. 바로 어제 12일!

이서방도 장미꽃다발과 케익을 사가지고 와서 축하해줬어.

언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네.
엊그제 태어난 것 같은데...
주연이 생일이 곧 다가오니까 만 13년이 되어 생리를 하게 되네.

언니 부탁이 있어.
메일 하나 보내주시길...사랑하는 조카에게. 주연이 멜: lordkite@hanmail.net

아니면 언니의 그 명필, 명문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 주던지요.
이제 어른이 되는 주연이에게...

부탁드립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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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호들갑을 떤 것도 실은 주연이에게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특권, 좋은 추억을 갖게 하고 싶어서였다.

아, 난 그 손님을 어떻게 맞이했던가.
별 기억도 없다.


부모님으로부터 또 오빠들로부터 축하를 받지도 못했고, 내겐 큰 일이었던 첫날의 그 사건이 그냥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으니까.

아버지께서도 아셨겠지만 모르는 척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난 엄마에게 배운 데로 그것을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처리했는데 참으로 괴롭고 귀찮은 일이었다.

더구나 면 생리대란 게 얼마나 처치 곤란한 두통거리였던가.

삶아서 빨랫줄에 널자면 눈에 띄고 말아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 큰 어른들 집에 기저귀(?)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니...

하여간 참 부끄러웠다.

이제 주연인 그럴 필요가 없다.

당당하게 여성을 맞이하고 준비하고 자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엄마인 내가 저를 확실하게 도와줄 테니...

제 아빠가 케익과 꽃다발을 사온다고 했으니 이번엔 제가 좋아하는 걸 사게 해주고 싶었다. 추억으로 훗날까지 기억하라고...


집에 돌아와 주연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Today is very special. So I want to buy you something."

정말 특별한 날이니 딸이 원하는 걸 사주겠다고 했다.

여성의 문에 들어서게 된 것이 당당한 특권인 것을 자각하라고...

늘 옷타령을 많이 해서 옷을 사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CD를 사달라고 한다. 그러라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찬미에게도 언니의 '사건'을 말해주면서 오늘의 쇼핑은 특별히 언니만을 위해 하는 거라고 설명해 주고는 함께 기독교 백화점엘 갔다.


찬미도 생리가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는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이제 언니는 어른이 되는 거야. 가슴이 나와서 그동안 브래지어를 하고 다녔지? 이제 생리를 하게 되면 임신도 할 수 있고 그러면 엄마도 될 수 있는 거야... 몸가짐도 이젠 숙녀같이 해야 되는 거고..."

그런 설명을 하면서 나도 흥분이 되었다. 이러다 금세 할머니 되는 거 아닌지 몰라...

초경이 이렇게 빨리 온 것처럼 말이지...


주연이에게도 생리의 의미와 여성 성징의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었지만 귀찮아하는 표정이다.

꿀꿀한 기분이 바로 그런 거겠지.

그래, 귀찮지. 귀찮고 말고...
하지만 그건 여성만의 특권이란다.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엄마는 그게 구속인줄, 형벌인줄만 알았단다.
그런데 아니더구나.
모성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정말 몰랐단다. 뒤늦게 귀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고.

사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주연이의 초경이...
내년쯤 오지 않을 까 생각을 해서 별 준비도 해두지 않았다.

눈치를 챘어야 했다.

요즘 주연이가 부쩍 컸다. 내 키 만하게...
그래서 지나가는 주연이를 세워 키를 대보기도 여러 번 했었다. 물론 아직은 작았지만 거의 내 키에 육박해 오고 있었다.

"야, 그래도 아직 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와 어깨동무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갑자기 불쑥 컸는데 저도 그런 말을 한다.


"엄마, 내가 크긴 컸나 봐. 방학 끝나고 학교엘 가보니 나보다 컸던 애가 내 눈 아래로 보이더라. 큭큭큭."


기독교백화점에서 <소망의 바다> 1, 2집을 사고선 다시 할인매장으로 향했다. 위생용품을 여유있게 고르고 난 뒤 다시 물었다.

"너, 또 사고 싶은 거 있어?"
"아, 베개..."


아주 푹신하고 예쁜 베개를 사고 싶어했다. 전부터.


이모가 가져온 캡슐 베개도 있었지만 새 걸 사고 싶어했던 지라 고르라고 하니 테디베어가 그려진 푹신한 베개를 볼에 대면서 가져왔다.


"자, 가자."

유쾌한, 의미 있는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데 뿌듯했다.

그 날 밤, 남편은 안개꽃에 둘러싸인 빨간 장미꽃 14송이 꽃다발과 쵸코케익을 사가지고 왔다. 잘 사오긴 했는데 그 날 잔소리를 했다. 금액을 알고선...


지난 장마 이후 꽃값이 폭등했단다.
그러면 한 송이만 사올 일이지... 그냥 상징적인 의미일 뿐인데...

나, 그 값을 듣고 툴툴거렸더니 남편, 화를 냈다.

"그럼, 뭐하게 사오라고 하냐. 네가 사올 일이지. 꽃가게 주인과 상의해서 준비해 온 건데... 평생 한 번인데..."

쳇, 가게 주인이야 돈 버는 일인데 뭘...

하여간 가벼운 실랑이를 하고 난 뒤, 테디베어를 베고 잠든 주연이 머리 맡에 카드를 써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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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gratulations on Special Day!>

주연아, 축하해.
어른의 문에 들어선 걸.

이제 몸과 마음을 더욱 정결하게 하고
깊고 넓은 생각으로
반듯한 어른의 길을 준비하길 바래.


엄마는 너의 "평생의 동지"인 것을 기억해라.

2002. 9. 12.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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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를 쓰면서 "평생의 동지"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살다 보면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궂은 일도, 예기치 못했던 나쁜 일도 있을 수 있는데... 딸이 혼자서 고민하며 그 짐을 지기보다는 그 짐을 덜어 질 수 있는 평생의 동지가 되고 싶었다. 종적인 모녀간의 관계가 아니라 횡적인 동지의 관계!



무슨 일이 있든지 네 "평생의 동지"는 널 배반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