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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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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눈물샘


BY 푸른파도 2002-09-16

며칠전에 드디어 읽고자 했던 <봉순이 언니>를 빌렸다.
책방에 갈 때마다 대여되고 없곤 했던 책이라 거의 포기(?) 정도에 이르렀을 때 다른 책을 구하러 갔었는데 얄밉게도 눈에 띄었다.
책방 주인은 내가 처음으로 그 책을 원했을 때부터 들어오면 전화해 줄까고 했지만 시간이 어떨지 몰라 늦게 읽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 다 읽은 후에나 읽지 하며 나오곤 했었는데...
그 <봉순이 언니>가 또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오늘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집안 일도 제쳐 두고서 눈 벌개지며 울었었는데, 밤에는 또 티비 드라마 <위기의 남자>가 날 울린다.



그랬다.
나는 늘 울보였다.
지금도 여전히 울보지만 어릴 때부터도 유난히 잘 울어서 동생 친구들이 저녁에 우리집에 티비를 보러 오는건 기실 티비보다도 내 우는 모습이 더 재미 있어서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그때가 중학교때였던가 동네 친구(향미라고 한다)와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는 그 친구 집으로 갔다.
토요일 오후였는지 일요일 오전이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그 친구가 마당에 빨래를 널고 있는 사이 난 그 친구네의 안방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티비에서는 너무 슬픈 영화가 나오는 중이었다.
아버지로 최불암씨가 나왔었고 어머니 역할로는 김윤경씨가 연기했던 것 같다.
조금 보고 있는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목이 메일 정도로 속울음을 울었다.
조금은 창피했던지라 울음을 참으며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데 친구가 티비에서 뭐하는 중이냐고 자꾸만 물었다.
난 끝내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목이 메어져 있었으므로.
빨래를 다 널은 친구가 방으로 들어오며 도대체 왜 대답을 안하느냐고 하면서 뒤에서 내 얼굴을 제꼈다.
그러더니 하하하하 웃어댔었다.
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우는 일에만 더 열중하게 되었다.
이미 들켜 버렸으니 이젠 소리까지 내어도 되겠지 싶은 편안함에...
곁에 앉아서 티비를 보게 된지 채 10분도 안되어 친구의 눈가에서 주루룩 눈물이 흘러 내렸다.
서로의 모습을 한번 바라본 우린 잠시 웃었지만 이내 방바닥을 치며, 통곡까지 해가며 그 햇살 좋은 날에 마냥 울었었다.
그 친구는 지금 그걸 기억하고 있을까?
해년마다는 아닐지라도 2년에 한번쯤,아니면 3년에 한번쯤 만나게 되곤 하는데 한번도 묻지 않은 그 어린 날의 기억이 오늘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어릴 때는 자라서 어른이 되면 눈물샘은 서서히 말라서 정작 울고 싶을 때에도 눈물이 나오지 않게 될줄 알았더랬는데 그건 그나큰 나의 착오일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보니 눈물은 더 흔해진 듯 싶다.
남편과의 작은 냉전으로 인해 가슴이 막막해질 때에도 가장 먼저 친구해 주는 것은 따스하다 못해 뜨거운 내 눈물이니까.
큰아이가 두살쯤이었었나 어느날 티비를 보다가 우는 나를 보더니 두루마리 휴지를 끊어서 내 얼굴로 다가오더니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인자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리 기특한 짓을 하냐고 말도 안돼 말도 안돼를 연신 외고 있었었지.
그러나 내 아이들은 둘째도 셋째도 여전해서 지금도 내가 눈물을 보일라치면 휴지들고 달려들기가 일쑤다.
그런 옆에서 남편은 늘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이해가 안가를 외치고 있지만.
그래서 남편은 가끔은 슬픈 드라마라도 나올라치면 채널을 돌려버리곤 한다.
내가 옆방에 가서 보려고 하면 같이 있자고 옷자락을 잡아대면서 말이다.
남편은 오늘도 냅킨을 쥐고 있는 손이며, 빨개진 눈이며, 티비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마땅치 않아 했다.
(남편이 마땅치 않아 하는건 어쩜 내 눈물보다도 그 드라마의 내용인지도 몰랐다,그 외도이야기에 티비속으로 빨려들듯 열중인 아내가 못마땅한 것일게다)
그러나 난 내 눈물샘이 마르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오로지 내 눈물에서만이 아직도 내 감성이 살아 있다는걸 확인하게 되기에.....



앞으로도 더 많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나는 내 삶의 부산물을 정화시켜 내가 가지고 있는 순수를 지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