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주부의 알.콩.달.콩
6.
냉장고
"김치는 어떤거야? 빨간 그릇이야?"
난 밥을 풀테니 당신은 반찬을 꺼내라는 나의 명령에 신랑은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거야."
"그럼 주황색 그릇에 담긴 건 뭐야?"
".....뭐?"
"이거. (열어보더니)어? 이것도 김치잖아. 그런데 냄새가 왜 이래?"
"김치?...아, 맞다. 작년 겨울에 어머니가 주신..."
"뭐야? 이거 있는데 왜 안 먹었어?"
"그게..."
"그럼 이건 뭐야? 스텐레스 김치통에 담긴건? 이건, 총각무네? 이것도 그대로 있네?"
"그게..."
신랑은 어떻게 그리도 잘 찾아내는지, 저는 생각지도 못한 반찬들을 신랑은 잘도 찾아냈어요.
"어휴, 깊숙이도 넣어 놨네. 어이구, 이건 몇 주 전에 산 게맛살. 이건 지난 일요일에 산 깻잎...왜 이
걸 다 이렇게 꼭꼭 숨겨놨냐? 어쭈, 어묵은 여기 있는데 왜 어제 또 샀냐?"
"...그게 말이지...."
그게 말이지, 사실은 냉장고에 뭐가 들어있는지 다 외울 수가 없으니까 며칠 지나면 샀다는 거 까먹고,
또 나중에 꺼내 먹어야지 하고 깊숙히 넣어 둔 것 까먹고..그러다 보니까 아예 구석탱이에 있는건 있는지도
모르고 또 사고, 모르고 안 꺼내놓고 그러다 반찬이 상하기도 하고...그런건데...
속으론 속속들이 이유를 대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어요.
"이거 상한 반찬들은 어쩔거야? 버릴거야? 어후, 대체 우리 버리는 음식만 해도 얼마냐? 너무 많이 사
서 다 못 먹어 버리고, 있는지도 몰라서 버리고..."
"누군 그러고 싶어 그러나? 냉장고가 워낙 크니까(?) 뭐가 들어있는지 잘 몰라서 그러지!"
"?獰? 첨엔 워드로 냉장고 모양 찍어서 스티커로 붙여 내용물 정리한다더니 한 달 내내 변경이라도 했
냐?"
"..................."
하지만, 처음엔 다 그런거 아니예요? 매일 냉장고 속을 뒤져 보는 것도 아니고 하루 세끼를 다 집에서
먹는 것도 아닌데, 특히 자기는 저녁까지 먹고 들어와 더욱 냉장고 열 일이 없는데 내가 무슨 인공지능
냉장고야? 그걸 다 기억하게. 사실, 신경도 잘 안 쓰이더라구요. 아니, 신경 쓴다고 한 건데도 자꾸만
버리게 되는 내용물이 있더라구요.
겨우 신혼 살림에도 난 이러는데 우리 엄마들은 참 대단하세요.
우리 친정과 시댁 냉동실을 무심결에 열어 보면 그 이름도 모를 것들이 우루루 쏟아질 듯 빽빽히 들어차 있
거든요. 떡이며 고기, 사탕, 생선, 부침개, 돈가스, 엿, 오징어, 심지어는 쑥갓까지...엄청난 종류의 음식물들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땡땡 얼려져 있거든요.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그 신비의 냉동실...
엄마들은 그걸 다 기억하고 계시겠죠?
아무튼, 그러던 차에 어디에서 사은품으로 '냉장고 내용물 현황표'를 받게 되었어요.
"아하하, 함!(신랑을 부르는 호칭이예요. 함씨 거든요.) 이거 봐!"
"엉? 냉장고 현황표? 어? 냉장고에 뭐 들었나 썼다 지웠다 하면서 파악하는 거야? 우왕~~너한테
꼭 필요한거네? 맨날 버리기만 하는데 이젠 버릴 일 없겠네? 흐흐."
"응."
왠지 이젠 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 그것에 냉장고 내용물을 정리해 두진 않았지만 신랑아, 기대하시라. 나의 꼼꼼하고 알뜰한 냉장고
정리벽이 시작될테니.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