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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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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과 실험정신


BY 은빛여우 2002-09-14

호기심과 실험정신~!

언뜻 물리 화학 시간을 연상시키는 이 두 단어는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집 식구들의 성향을 표현하기에 딱 알맞은 말들이다

울신랑 .....

무엇이든 응용하고 나아가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것을 좋아한다

회사 일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 맡은 자리에서도 항상
누군가가 해온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토씨 하나라도 바꿔서
일하는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그런 면이 자신을 굉장히 피곤하고 더 힘들게 만들곤 하여도
자신의 색깔대로 되어진 일들을 보면서 피곤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나....

나는 호기심의 대가.....

어디서 무슨일이 생겼다면 원인 경과 결과를 모두 알아내지 않고서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성격의 소유자

그렇다고 몹시 수선스럽다거나 말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단지 일의 전모를 알아야만 속이 시원한...단지 그뿐이다

여기까지는 신랑와 나의 삶은 평범...아니 순탄 하였다

가끔 신랑의 실험정신이 빚어내는 우스운 해프닝이 그이와 나를
웃게 만들었고 나의 호기심이 물어오는 갖가지 가쉽과 스캔들...
등등이 우리의 이야깃 거리가 되어지곤 했었다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아빠의 실험정신을 그대로...아니 몇배로 뻥튀기 해서 물려받은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터다

누워 우유 먹던 시절엔 그리도 얌전해서... 저런 아이라면 열둘도
키우겠다...는 온갖 칭송을 받던 아이가 8개월에 제 혼자 서고 9개월에 발떼고 10개월에 걸으며 뛰기 시작한 그때부터 우리 생활에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할머니와 통화하다가 - 할미두 빠빠(우유)머거...자~ -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채 알아 차리기도 전에 컵에 든 우유 한잔이 몽땅 무선전화기 속으로 쏟아졌다

물이나 같으면 건조시켜 닦아내면 된다지만 우유나 요거트는 말라붙어 온갖 부품이 떡덩어리가 된단다

결국 그 무선전화기는 새로 산지 두달만에 울딸 장난감이 되어 지금껏 가지고 놀고 있는 품목이다

어찌어찌 눈썹 다듬는 가위로 고무줄로 묶어준 제 앞머리를 정확하게
고무줄 바로 밑 기둥을 잘라내 한동안 이마위 정수리 밑부분은 폭격
맞은 논마냥 훵~하니 비워져 배냇머리 몽땅 짤라내고 웬만큼 자라도록
갖가지 모자 씌워주기에 바쁘게 만들었다

우리 딸의 실험정신이 완벽하게 꽃 피기 시작한것은 동생이 태어난 뒤부터라고 할수 있겠다

엄마의 호기심을 스무배쯤 물려받은 우리 아들은 제 누나의 어떠한 실험에도 침을 질질 흘려가며 즐거워 할만큼 호기심이 왕성하다

찰떡궁합이 그토록 사이가 좋으며 이 아이들 만큼 서로를 필요로 할까 싶을 정도이다


어제......

날씨 탓인지 기분탓인지 갑자기 싱크대 온갖 냄비며 그릇을 죄다 꺼내
펄펄 끓는 물에 담가 소독하고 기름때 앉은 그릇들은 닦아낸다고 세제며 수세미며 신문지 넓게 깔고 땀 뻘뻘 흘리며 닦고 있었다

한동안을 어깨가 아프도록 냄비며 솥단지 닦아내고 있던중 어떤 아이도 참견하며 나서지 않음이 문득 이상하게 여겨지고....이것은 사고~!라는 생각이 미쳤다

서둘러 장갑을 벗어내고 앞치마에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가며 아이들 소리가 나는 안방으로 향했다

살며시 문을 열고 아이들을 살펴보니 엄마의 화장대 의자에 동생을
앉혀놓고 울딸 그동안 모아놨던 제 머리핀을 있는대로 꽂아놓고 있었다
핀도 많았고 까까머리 그 짧은 잔디같은 머리에 그 핀을 꽂을수 있었던게 신기할 정도였다

거울로 애미의 얼굴이 보여 반갑게 뒤를 돌아다 본 아들의 얼굴은.....세상에!!!!

눈썹에는 연필로 송승헌 저리가라의 숯검댕 눈썹을 그려 놓았고 (그것도 양쪽것이 너무 길어 옛날 김미화가 하고 나왔던 일자 눈썹 가까운)
양볼에는 빨간 립스틱으로 홍조띤 볼연지 동그랗게 그리고 눈두덩에는 한쪽에는 하늘색 한쪽에는 초록색을 (엄마가 가진중에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 칠했으며 입술에는 며칠전 마트에 갔다가 오랫만에 신랑에게서 선물로 받은 와인빛 립스틱이 발라지다 못해 뭉개져서 잘만 긁어내면 다시 작은 립스틱 하나는 만들만한 분량이 묻어있는 것이었다

애미의 심상치 않은 기운에 딸아이는 벌써 숨을 구석부터 찾고 있는데 속없는 아들녀석은 분장 덜한 삐에로 얼굴을 해가지고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양팔을 벌려 안아 달란다

평소 엄마 화장품에 눈독을들여 제 얼굴에 발라보고 싶은것을 끝내 동생에게로 그 대상을 옮겨 놓은 딸의 실험정신과 누나가 어떠한 모습으로 저를 만들어줄지 흥미진진하게 얼굴을 내맡기고 앉아있는 아들아이의 철저한 호기심이 빚어낸 작품이었던 것이다

두세 옥타브쯤 올라가는 음성으로 온갖소리 야단을 쳐놓고 아들아이
더운물로 비누칠해 북북 씻겨놓았지만 얼굴 곳곳이 불긋불긋 먼산에 철쭉 핀 모양으로 알록달록이다

늦게야 들어온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한참 거품을 물고 있는데 울신랑 한마디 한다

- 그래두 둘다 실험정신을 가진것 보다는 낫네....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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