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에 눈이 큰 그 여자는 소녀같은 청순함을 지녔지만, 그러나 어딘지 그늘이 드리워진 느낌이었다. 밝은 음성에 때때로 소리내어 웃기도 잘 했지만, 왠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막연한 느낌만으로 어떤 짐작을 한다거나 물어보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냥, 한 사무실에서 삼 년 남짓 근무하는 동안에,띄엄띄엄 들은 이야기로, 결혼생활이 평탄치 못함을 대충만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후 한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와의 사이에 남매를 두었다는 것, 시댁에 들어가 살면서 시집살이도 호되게 하고 고생 많이 했다는 것,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게 될 때까지 남편이란 사람이 생활비 한 번 제대로 대준 적 없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모든 삶의 짐을 지고 헤쳐 나왔다는것. 남편은 맘내키는 대로 세상을 떠돌다가 가뭄에 콩나듯이 한번씩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것... 그녀는 아픔을 속에다 숨긴채, 적은 수입으로 두 아이를 뒷바라지하면서도 늘 반듯한 모습이고자 했다.
그러다가 우린 직장을 그만두고 헤어지게 되었다. 어쩌다 그 시절의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곳에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오늘, 그녀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결혼식이라는 전화를 받았을때, 혹시 사위를 보나? 생각했지만, 엄연히 그녀의 결혼식이었다. 우리 서로 뜸하게 지내던 지난 몇 해 사이에 그녀는 정식으로 이혼을 했고, 일하던 직장에서 연하의 총각신랑감을 만나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된 거였다.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모시고, 대학생이 된 남매와 그 아이들의 친구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눈물어린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로해....자세한 이야기 안 들으면 어떠랴, 오늘부터 정말정말 행복하기만 바랄 뿐이지. 그 동안의 힘겨운 세월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행복을 흠뻑 누리길 바랄 뿐이지. 신랑의 팔을 끼고 퇴장하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낼 때,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