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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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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가는 날


BY 은빛여우 2002-09-12

잠귀가 절벽인 나는 어스름 새벽 미명의 그늘에서 부지런히 준비하여
아침 학교갈 즈음에 단정하게 담아주시는 엄마의 김밥 마는 모습을
한번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내 잠귀 어두운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소문 날만한 곳엔
소문이 나서 무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결혼한다고
지금 신랑이자 그때 남자친구가 집으로 인사를 오자 울 아빠 당신딸
암껏도 할줄 모르면서 입맛은 까탈스럽고 성미는 득달같고 급한것을
염려하신것이 아니라 송장보다 더 절벽인 딸의 어두운 잠귀를 걱정
하실 정도였다

어릴적 어느날인가 한밤중에 동네에 도둑이 들어 이리저리 도망치다
우리집 담밑에 쌓여있던 장작더미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일이 있었다

그때 온 동네 사람들 < 도둑이야~!> <불이야~!>를 외치며 양동이며
대야며 하다못해 양재기 대접까지 물을 떠다 불길을 잡느라 야단이
었는데 동네에서 단 한사람.... 불길이 오르는 그 방 주인이었던
이여자만이 아침 학교 등교할 시간까지 느긋하게 코를 골고 잠을 잤더라는 본인도 믿을 수 없는 전설(?)도 있다

아무리 잠귀가 절벽인들 또한 잠들면 송장에 가까운들 딸이 소풍을
간다고 날을 받아왔으니 아침일찍 일어나 김밥을 말아야 하는 터....

나는 어찌된 일인지 재료 준비하는 일보다도 알람 맞춰 일어나는 것이
더 큰일이다

우선 밥솥 예약부터 해놓고 자명종 정확하게 10분 간격으로 두개 맞추고 티비 오디오 그리고 신랑과 내 핸드폰 시간 정해놓으면 모든것이
정해진 시간에 죄다 울어대기 시작하면 신랑이 애써 나를 깨운다

자식이 무서운겐지 엄마 자리가 무서운겐지 딸아이 3년째 유치원 보내도록 이렇게 맞춰둔 알람덕분에 한번도 못일어나는 실수 해본적 없고
단한번도 사서 도시락 싸본 일이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 신랑이 흔들어 깨워준 덕분으로 일어나 졸린눈
비벼가며 커피 한잔 마시면서 정신을 차려 김밥을 준비했다

엄마 안닮은 작은 아이가 졸린눈 부벼가며 옆에서 놀고 있고 신랑역시
어수선한 때문인지 주섬주섬 김밥 주위로 다가온다

소풍가는 흥분때문엔지 딸아이도 깨우지 않아 일어나 모처럼 온가족이
한가하고 느긋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다

딸과 함께 이것저것 간식이며 음료수도 챙겨넣고 은박호일에 곱게
말은 김밥을 조심스레 넣어주며 가방을 닫아 한곁에 놓아두니 두녀석이 소풍 가방 곁에서 떠나질 않는다

소풍날 아침까지도 엄마가 깨워야 일어나 지각을 겨우 면하게 등교를
했던 지애미보다 딸아이의 소풍길은 더욱 풍성할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나긴 아침을 마감한다.......




엄마가 정성스레 싸주시던 김밥이 그리운
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