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의 어느날이다.
북한 공작원 김신조가 남한에 침투하여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이루어 지고 있을때였다.
방송을 들으니 그들이 세검정 어디에 숨어있다고 한다.
우리집은 은평구 대조동 (불광동 근처) 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문단속을 철저히 하시고
모든 식구(어머니, 언니,나)를 한방에서 자게 하셨다.
집안의 가장 으로서 가족을 지키겠다는 의도 셨던것 같다.
특수 훈련을 받은 그들이 맘만 먹으면
무슨일인들 못하리오 만은 그래도 우리는 그런 아버지가
참 믿음직해 보였다.
아버지는 선교사님댁 운전을 맡아하셨는데
다음날 새벽 일찍 나가실일이 있어
식구들을 깨우지 않으려 방문앞쪽에서 주무셨다.
1월이라 모두 이불을 두텁게 덮고
(예전엔 윗풍이 세서 코가 시려워 얼굴까지 덮고 자야 했다)
곤하게 자고 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나의 어머니는 주무시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 나가셨고 언니와 나는 아버지,어머니가
돌아오실때 까지 이불속에서 떨고 있었다.
조금후에 두분이 돌아 오셨을때 집을 함께 돌아보니
도둑은 부엌을 뜯고 들어와
연탄집게를 달구어 방문 손잡이 부분을 태워 구멍을 뚫고
우리가 자는 방까지 들어 왔던것이다.
하지만 들어와 봤자 넉넉지 못한 생활에
뭐 훔쳐 갈것이 있었겠는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가져 갈것이 없자
집에서 닭을 좀 키워 모아둔 계란을
언니의 노란색 니트옷-(몇번 입지 않았음)과
엄마의 밤색 조끼(겨울에 할머니들이 많이 입는 실로 짠옷)
로 꽁꽁 싸서 현관앞에 나갈때 가져가려고 모셔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자고 있는 방문을 연것인데
우리 아버지 그렇찮아도 김신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도둑이 문을 열자 찬바람이 얼굴에 확 돌더란다.
순간 우리 아버지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우리식구는 이제 몰살이구나 하고
어떻게 해야 가족을 구할수 있을까 연구중
검은물체가 머리맡에 벗어놓은 아버지의 바지를 낚아채는 순간
직감적으로 도둑임을 간파하고
그의 다리를 잡자 도둑 놀라 도망가는데 아버지의 바지는
끝까지 놓지않고 들고 가버렸다.
아버지는 돈 보다도 지갑에 든 운전면허증을 더 걱정하셨다.
그리고 김신조가 아니었음을 하늘에 감사하셨다.
그리고 옷에 싸인 계란을 보고 마음 아파 하셨다.
아버지 말씀에 추측컨데 그집에 노모와 언니만한
딸이 있었을거라며 차라리 조금더 참고 있을것을 하시며
후회 하시는 것을 보았다.
날이 밝자 통장님이 우리집에 오셨다
새벽에 잃어버린 아버지의 지갑을 가지고 말이다.
지갑을 열어보니 얼마 안든 돈만 없어지고
다른것은 그대로 들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앞을 쓸려고 하니 아버지의 지갑이 놓여 있더란다
아버지는 웬일인지 도둑이 가져가려던 계란을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김신조의 두려움 보다 내심 누구를
기다리는듯한 모습이었다.
아마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그도둑을 내심 기다리셨던것 같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그시절 아픔이었던거 같다.
누구나 다 어려웠던시절
비록 남의것을 훔쳤을지라도 자신의 행동에 양심은 느낄수 있는
요즘 물건은 둘째 치고 남의 목숨을 빼앗고도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그런 시대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지금 바라기는 그때 저희 집에 오신분
이제 돌아가고 안계신 우리 아버지
그때 아저씨의 가정을 위해 기도 많이 하셨어요
부디 지금은 예전처럼 어려운 삶에서 벗어 나셨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