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날씨가 이렇게 흐릿한게 아침부터 기분이 몹시 울적해진다. 그러구 보니,아빠가 보고싶다. 멀리 계신 우리아빠는 지금쯤 출근하시느라 지하철을 타셨겠지.
어?퓽?적 부터 아빠는 날 많이 이뻐하셨다. 기관지가 나빠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얻은 게 첫 딸인 나였는데,세상에 자식하나 남겨놓지 못하고 죽을 줄 알았다가 낳은 딸이라서 그런지 많이 사랑해 주셨다, 동생들하고 행여 싸움이 붙어도 항상 내편만 들어주셨고,어디든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될때까지도 아빠 옆에서 잠을 자며,동생들에게 빼앗긴 엄마 젖꼭지 대신,아빠 젖꼭지를 만지면서 잤다.
그 때 우리 아빠는 -우리 민선이 언제 살이 찌나-고 땅이 꺼지게 걱정하셨었는데,,하늘이 감동하셨는지(?)그 담부터 넘치는 살을 보내 주었다.
고 3때 일하느라 지친 엄마가 설겆이도 안해 놓았다고 하면,말없이 부엌으로 나가 설겆이를 해 주시던 아빠,부족한 용돈을 하소연하면 엄마몰래 내게 동전이라도 쥐어주시던 아빠,언제나,,내 입학식이나 졸업식 땐 제일 먼저 와 주시던 아빠였다
결혼하던 전날 저녁에,,,나를 불러 앉혀놓고,,
시어머니 모시는 일은 힘든 거라며,,우선은 네-하고 순종하고,,그러나 살아보다 정말 안되겠다면 집으로 돌아오라는 파격적인 말씀으로,나와엄마를 기절시키시기도 했다.
결혼 식이 끝나고 나서,밤에 혼자 몰래 우셨단 말을 엄마한테 전해듣고,,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처음 하는 결혼생활의 스트레스때문이었는지 갑자기 꼼짝도 할 수 없는 병이 났을 땐,데레가겠노라고 말씀하셨던 아빠였고,
뜻하지 않게,고향을 떠나 멀리서 살림을 시작했을 때,딸을 보러 먼 길을 오셨다가 떠나는 기차역에서 목메어 하시던 아빠였다
아이가 아파서 입원했을 땐,지친 나 대신 아이를 보살펴주러 오셨던 아빠는,아이가 아파서 시댁에 죄송하다는 말을 하셔서,나를 정말 화나게 했었다.
세상에 많은 딸들 중에서 나처럼 이기적이고 나쁜 딸도 없다..
그런 아빠의 생신에도 너무 멀고,애들이 아프다는 핑게로 가지도 못하고,,,아니 가지도 않고,
오늘은 정말 아빠가 보고 싶다.....
이젠 더 이상 아빠라고 부를 수도 없는,,아부지라고 불러야 하는 날이 싫다,,,
다시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되돌아 온다면 정말 아빠에게 좋은 딸이 되고 싶다.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며느리도 아닌 아빠의 딸로서만 살던 시절에 난 참 철없이,걱정없이 행복했었다고,,고마웠었다고,,감사하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