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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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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 그 안개


BY 다라 2002-09-03

새벽부터 일어나 나갔습니다
내소사와 전나무 숲은 전부터 무척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너무 이른 시각 입장권 받는 사람 없이 무료로 통과
문살이 특이하다고 하여 자세히 보고 1000년 나이의 느티나무도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내소사 뒷산의 구름과 능선이었습니다
변산의 아름다움 중에서도 압권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하여 한없이 보아두었습니다

내소사 안의 연못에는 붉은 연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너무 많이 심은 것도 아니라서 한 줄기에서 난 연잎이 어디까지 뻗쳐 있는가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부대끼도록 많이 피어있는 연꽃도 예쁘지만
한 포기씩 느른하게 피어 있는 연꽃은 또 다른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여 주었습니다

다시 바다로 왔습니다
가족들은 돌아오자마자 다시 바다로 나가려고 합니다
물놀이를 이번에 안 하면 다음 여름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겠지요
먼저 내 보내고 잠시 뒤에 가보았더니
해변에 있는 자갈돌로 동생을 파묻는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돌들을 쓸어다가 발 위에도 무릎 위에도 쌓아올립니다
돌은 쌓여지는 척 하다가 스르륵 무너져 내렸습니다
자꾸 하니까 몇 개쯤은 무릎에 얹히기도 하였습니다
자연을 온몸으로 만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는 경사가 깊었습니다 금새 물이 어깨위로 차 오르려고 합니다
본능적인 무서움이 밀려옵니다
그것도 더위를 잊는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너무 추워 몸이 덜덜 떨립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피서란 더위를 피해서 시원해지는 것이 아니고
추위 때문에 더위를 잠시 잊는 또 다른 고생입니다
마음이 즐거우니 그것으로 좋지만요

놀다 지쳐 그만 정리를 하였습니다
샤워하는 물은 또 왜 그렇게 차가운지요
흡사 냉장고에서 금새 꺼낸 듯한 차가움입니다

하지만 무적의 우리 가족들은 '아 시원하다' 하는 농담을 하면서 씻었습니다
입술은 파랗다 못해 까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 시원하다 그러면서 씻으니 그렇게 차가운 물도 조금은 덜 차갑게 느껴지는 겁니다

내변산의 월명암으로 갔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우산을 하나씩 들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갔습니다
공기 맑은 산속을 걸어가는 상쾌함이 가득하였습니다
목이 무척 마르다고 여겨지는 지점에는 샘물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월명암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대한 실수를 하였습니다
월명암의 정상을 가지 못한겁니다
월명암 이정표를 따라가다보니 오히려 약간 내려가야 했습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월명암만 둘러보고 왔습니다
다 내려와서야 낙조대 쪽으로 갔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월명암에 가서 낙조대를 안가고 돌아왔으니 뭐한 겁니까 ?
원래 머리가 나쁘면 옆 사람이 고생한다고 하더니
우리 가족들은 나를 따라 와서 낙조대도 못 보고 고생만 했지 뭡니까
하지만 제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아무도 우리가 헛수고한 걸 모릅니다
낙조대는 다음에 가보면 되겠지요
하루만에 관광과 해수욕과 등산을 하였다고 모두들 만족입니다

집으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좁은 차안에서 여러 시간을 오니 싫건 좋건 같은 화제를 가지고
온가족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싱거운 소리를 하면서 웃기도 하였습니다
그것도 흔치 않은 일이라 좋았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넓게 열고
가족끼리도 서로를 바라보고 이야기도 해본 여름 휴가였습니다
휴가치고는 대 성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