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집안일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소음을 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청소기를 사용할 때라던가 설거지를 할 때, 그릇을 부딪치게되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듣는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시끄러움의 차이가 있는것 같다.
딸 아이가 기분이 울적할 때
면 '엘리제를 위하여' '소녀의 기도' 를 피아노 선율로 들려 줄 때면 기분이 맑아지곤 했다.
그러나 작은 녀석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반복해서 치는 소리에는 짜증이 난다.
그것도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땐 아이의 마음은 생각지 않고 화를 내며 그만 하라고 소리치곤 한다.
며칠 전, 설거지를 하다가 세제가 묻은 손이 미끄러워 그릇을 깨뜨린 적이 있다.
마침 남편의 기분이 상해 있을 때인지라 화를 벌컥 내며 그릇을 소리나지 않는 그
릇으로 바꾸라는 둥, 여자가 조심성이 없다는 둥...
그렇지 않아도 내가 가장 아끼는
베이지색 바탕에 해바라기 꽃이 울타리 사이로 내밀고 있는 컵 두 개가 깨져 속이
상한 내 심사를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화를 내며 평소에 불만
까지 다 나오게되어 크게 다투게 되었다.
'누구는 그릇을 깨뜨리고 싶어 깨뜨리느냐,
듣기 싫으면 나가면 될게 아니냐'며 좀 심한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다혈질인 남
편은 더 큰 소리로 온 집안을 뒤흔들었다.
그 바람에 아이들이 기가 죽어 눈치만
살피는 게 미안해서 내가 먼저 꼬리를 내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
았다. 작은 녀석이 살금살금 들어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내 귓바퀴를 붙잡고 귓속
말을 했다.
"엄마, 아빠랑 이혼하고 싶지?"
'이혼'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 나는 한참을 멀 건히
아들녀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9살 짜리 입에서 쉽게 튀어나오는 '이혼'이라는 말이 너무 놀라워 그 뜻이나 제대
로 알고 사용하는지 궁금하여 아이에게 '이혼'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 보았다.
"뭐긴
뭐야 엄마랑 아빠랑 헤어져서 따로따로 사는 거지."
"우리 반에도 엄마 아빠가 이혼
해서 할머니랑 사는 친구도 있고 아빠랑 사는 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나는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면 아무 하고도 같이 안 살 거야. 누나하고만 살 거야"
하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가?
아홉 살 짜리 아들녀석이 한 말에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져 남편과 다툰 일을 금방 후회했다.
그리곤 아이를 보듬어 안으며
"아니야, 엄마아빠가 조금 화가 나서 그런 거야" 했더니, 금새 얼굴이 밝아 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화가 풀어진 어느 날.
아이가 했던 말을 남편에게 하게 되었다.
아무말 없이 한 참을 생각하는 듯 하더니 남편은 농담을 한마디 던지고는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면서 나갔다.
"그 녀석 생각이 정답이네"
그 후로 우리 부부는 화가 났을 때도 감정을 많이 자제하게 되었고, 아이들 눈치를 살피다가 눈이 서로 마주치면 웃어 버리곤 한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불행한 추억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다짐이 되었고, 아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부모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배려이고 도리인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튼튼한 끈으로 묶여 있어야 할 것들이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있는 모습은 늘 불안하다.
소중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져 있어야 할 사람들.
너무 쉽게
끊어버린 끈 때문에 흩어져 버린 사람들.
아직은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될 아이들의 빈 울타리를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물건을 잘 정리해서 묶여진 끈,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이어 주는 인연의 끈, 우리는 끈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경제가 어렵고 어수선한 사회를, 그리하여 메말라 가는 감정을 아름답게 가꾸고
튼튼한 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몫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