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욜날!
남편은 지갑이 없어졌다고 생쑈를 하다가 겨우 찾아설랑
친구네 밭에 가서 고구마 줄기를 심는다고,
사람이랑 옷이랑 신발이 떡이되어 온 날이 있었다.
사람은 삽질에다 물 질에 떡이 되었고,
옷과 신발은 흙에 떡이 되어 있었고,
오자마자 코를 고롱고롱 기리며 잤었다.
오늘은 고구마밭에 물주러 안가면 안된다고
현상 수배범같은 얼굴을 짓길래,
순순히 따라 나섰다.
(그런 말할 땐, 100% 농군이다.)
(남편의 주장에 점점 순종하는 차칸 호박 ^^;)
약간의 간식을 준비해서
출발한 시각은 뜨거운 햇살이 조금 가신 오후 4시.
가는 길 양 옆으론
누릇누릇한 보리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느라 지쳐 누웠고,
모내기를 하려고 물을 대논 논과
모내기가 끝난 논에는 연둣빛 어린 모가
뽀송뽀송 갓난 아기들의 솜털같다.
같은 장소와 같은 길인데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 분위가가 자못 다르게 느껴진다.
신록 무성한 6월초에 자주 다니던 길을 지나자니,
산과 들과 논이 가깝게 느껴진다.
추수가 끝난 지난 가을과 겨울에 그 길을 지나갈 때,
산과 들과 논이 무지 멀게 느껴졌었는데........
사람도 그 사람을 만나는 계절이나, 날씨나,
하루 중 언제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 보일까?
이런저런 회상이 막을 내릴 무렵,
목적지에 도착!
남편은 혹시나 친구차가 있나 싶어
기린목을 해갖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더니,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 좀 실망하는 눈치다.
곧장 밭으로 가서 심어놓은 감자를 보았는데,
무성한 잎을 달고있는 감자와 난생 처음으로 하얀 감자꽃을 보았다.
'하얀 꽃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하얀 꽃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라는
동요가 생각났다.
그 이뿐 감자꽃을 다 땄다.
거세?를 시켜야 감자알이 굵어진다네?
거세시켜야 열매가 굵어지는 것이 어디 감자뿐이랴?
사람도 원치않는 자식을 위해
거세?를 하지 않는가?
정관 수술이나, 루프시술...
거세된 애완견...등등등...
감자4-5고랑 심어놓은 감자 중에서
두 고랑은 거름을 잔뜩 주고,
친구 안어른이 손과 발과 정성으로 가꾸는 친구네 감자이고,
두 고랑은 거름준 것과 안준 것과 비교한다고
일부러 거름도 안주고 돌보는 이 없는 불쌍한 감자가 우리네 감자였다.
눈으로 봐도 대번 차이가 났다.
거름준 두 고랑의 감자잎은 키도 크고 잎도 짙푸르고,
거름 안 준 두고랑의 감자잎은 키도 작고 잎도 푸릇푸릇하고.....
"그 때 같이 거름 주지~"구시렁구시렁 지청구를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무성한 감자를 뒤로 하고,
고구마 밭으로 발길을 옮겼다.
에잉?
친구네 고구마 두 고랑은 이발하고 면도하고 목욕재계한 신사같은데,
남편의 고구마 두 고랑은 털북숭이 로빈슨 크루소다.
고구마 싹은 보이지도 않고,
잡초만 무성하다.
으윽~~~~~
시퍼런 저 잡초밭을 우짠다냐?
머리카락 비틀어 올리고 머리엔 넓은 창모자,
목엔 육수적실 수건 한 장 두르고,
몸빼바지에 흰 티하나 걸쳤으니,
옷차림으로야 완전 농투성이다만,
장갑도, 호미도, 물통도, 물뿌리개도 준비않고,
간식만 달랑 준비했으니...원...
무늬만 농군?
친구네 집에 가서 호미랑, 물통이랑, 삽이랑, 물뿌리개를 갖고 와서
거국적인 잡초와의 전쟁에 드갔다.
팍..팍...팍...
호미질에 잡초 뿌리는 땅에 굳게 박힌 채, 잎만 떨어져 나온다.
에잉~
다시 한 번, 팍...팍...팍...
몇 번의 호미질에 그 파아란 잡초밭이 눈이나 깜짝할까?
겨우 잡초발 간지럽힌 격?
[농부는 매야 할 밭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구절을 떠올리며,
눈 앞에 보이는 잡초와의 한판 승부에 드갔다.
세상에...네상에...만상에... 많기도...
끊임없는 잡초들...잡초들...
어느 누가 심지도 뿌리지도 않았거늘...
잡초를 담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몇 번 비우고 왔는지 모른다.
이렇게 밭에 잡초가 무성하니,
보기싫고 땅도 숨을 쉬지 못하지만,
꺼먼 비닐을 씌우게 된단다.
수분 증발도 덜 되고, 김을 안 매줘도 되고...
또 오죽하면 제초제를 쓰겠는가?
사람 떵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농사를 지으려는 거지,
잡초와의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뭘 모르는 사람이
농부들이 농사를 이렇게 짓느니 저렇게 짓느니,
잔소리해대지만,
자기가 조금이라도 해봤거나,
아는 사람은 그렇게 뒤에서 잔소리 못한다.
쪼그리고 앉아 김을 매자니,
어느 새 몸에선 땀 냄새가 코 끝에 솔솔 난다.
아무대나 퍼질러 앉거나, 누워서 쉬고 싶다만,
해는 저물고, 갈길이 먼지라 쉴 수가 없었다.
까치는 낯선 사람이 왔다고
깍깍...울어대고,
옆 산에선 뻐꾸기, 꾀꼬리가
잡초랑 씨름하는 왕초보 농부 부부의 귀를 위로한다.
밭 한쪽 옆의 밤나무꽃은 나른하게 코를 쑤시는데...
결혼 전엔 밤나무꽃 냄새? 향내?를 몰랐다.
결혼하고 나서야 밤나무꽃 냄새가
아련하고 황홀한 사랑의 향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아이는 이 고랑, 저 고랑을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일을 도우는 건지, 망치는 건지, 장난에 여념없고,
초보 농군의 아낙도 일을 하는 건지, 망치는 건지,
잡초를 뽑는 다는 것이, 고구마싹을 캐질 않나?
'농사는 아무나 짓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삽질과 호미질이 아무래도
대구 토박이인 나랑 비교가 안되고,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몇번 물동이를 날랐다.
허리, 손바닥, 팔, 다리, 어깨에 스믈스믈 스며오는 근육통!
앉았다 일어서니 약간의 현기증까지?
에고고고.....
땅! 땅! 카다가,
땅!에 자빠지겠다.
두시간 남짓에 겨우 한고랑 김매고
말끔해진 고구마밭을 바라보며 흐뭇해 했다.
아무리 잡초를 뽑고, 뽑고, 뽑아도,
친구네 고구마 고랑만큼 깨끗하지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밭은,
친구네 안어른이 매일같이 밭에서 김매고, 물주는데,
우리네 고구마는 고구마 줄기심고,
밭에 2주만에 왔나? 3주만에 왔나?
농작물은 주인 발자죽 소리듣고 자란다는데...
심어놓고 바빠서 미쳐 못돌봤더니만,
잡초만 키운 셈이다.
어느 덧, 해가 기울고 산그림자가 퍼렇게 보일무렵,
밭에서 내려왔다.
결국 두고랑 중에, 한고랑 1/3만 김을 매곤 돌아왔다.
남은 고랑의 시퍼런 잡초들은 기세등등!
고구마싹은 기가 죽은 듯 하다.
고구마싹들에게야 미안하지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이럴 줄 알았으면 낮잠안자고 밭에 올껄...
그러니 예전에 선조께서 그런 시조를 지으셨었지.
[동창이 밝앗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매려 하나니...]
에궁...후회해도 이미 늦지.
밭으로 올라갈 땐,
이웃밭에 잡초하나 없는 게 눈에 안들어오더니,
2시간여 동안 김매다가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이웃집 밭은
왜 그리 매끈하게 곱다냐?
역시 남의 밭이 좋아보여?
우리네 고구마 두고랑은 완전히 버려놓은 땅처럼 보이더만...ㅉㅉㅉ
한참동안 눈을 붙이며 발길을 옮겼다.
집 마당이 밭이고, 덩실한 빨간 벽돌집 주인이 뉜가 부러워 하면서....
아무도 없는 친구네 집에 연장을 원위치시켜 놓으니,
옆집 개가 왕왕 짖는다.
개가 짖으니 닭장 속의 장닭도 꼬꼬~ 거린다.
닭도 낯가리나?
영문모르는 거위조차 꽥꽥~거리고......
"에이...시끄러~
됐네...됐어...그래...그래...니 똑똑타~
우리는 밭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다.
훔치러 온 사람아이다~
작년 가을에 왔었는데, 모리겠나?
짜아식! 본분에 충실하고 잇구먼..."
계속 왕왕~짖어대는 개에게 대꾸하다가
나중엔 수돗가에 앉아 씻고,
간식 좀 먹으며 쉬자니 짖어대던 개도 쉰다.
아이가 일어나니 개도 일어나 짖고...
작년 늦여름인가? 초가을인가?
고구마 수확한다고 여러 가족들이 초대받아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이 집 마당에서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소줏잔을 기울이며 얼큰한 밤을 보냈고,
돌아오는 길에 한 손 가득 그날 수확한 고구마가 들려져 있었었지.
'올 가을엔 우리가 심고 물주고 김맨 고구마를 수확할 수 있겠지?'
친구네 가족도 없고,
친구의 모친인 어른도 안계신 빈집에 앉아 손씻노라니,
어디서 청개구리 한마리가 폴짝 수돗가에 나타났다.
엄지손가락 한마디만한 청개구리가 귀엽다.
반가운 생명!
문득 사람소리가 그리워진다.
몸은 해동된 오징어마냥 흐느적거려도
마음은 땅파고 사는 농부의 마음이 새삼 위대하고,
햇빛과 하늘과 땅과 구름과 바람과 비가 하는 일이
위대함을 느낀 6월초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