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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29

CUP


BY 봄비내린아침 2001-06-03

가게를 정리할때
구석진 자리에 팔려가지 못하고 남겨진 커다란 부부 머그컵이 눈에 들었어

누구,
엉뎅이 마냥 어찌보면 참 볼품이 없는 컵이었지만, 전부터 내 눈길을 종종 받던 컵였는데,
누군가의 선택을 못받은걸 보면 내것이 되고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벙벙하고 퍼진꼴이 다부진 맛도 심플한 맛도 애교스런 맛도, 암팡진 맛도 없어.

그러나, 난 개인적으로 그런 꼴을 좋아하나 봐.

사람 또한 그렇지.
날씬하고 샤프한 사람보다, 조금 여유로워 보이며, 푸근한 미소를 가진 이가 더 정감이 들거든.

너무 세련된 이에게선 다가설 빌미가 없는 이유.
.
그래서, 내가 그 컵을 선택했다.
어쩜, 그 컵은 내게 오고싶어서 날 기다린건지도 몰라.

색깔은 말야..은은한 백색이야..
새하얗지도 않고, 약간 아이보리빛을 발하는데,
더우기,내가 좋아하는 연회색톤의 나뭇잎을 드문 드문 핸드페인팅해놓은거야..

만져보면 말야..
약간 까칠하고 도톰한 것이 강가에 구르는 조약돌 같은 느낌..
위에서 내려다보면, 입의 크기가 밥공기 크기만할 정도로 넉넉해.

그러니, 당연 못 팔려간게지.
용도가 어정쩡 하잖어.
컵도, 아닌것이 밥공기도 아닌것이..
하지만, 손잡이가 달린 꼴이 분명 밥공기는 아니고, 컵임에 틀림이 없지.

근데,
이컵은 우리집에 오면서 내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어.
넉넉하다는 건 얼마나 좋은거야?
여백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좋은 거야?

이컵으로 커피를태우면 3/5 정도는 여백으로 남아.
들고 놓을 때 느껴지는 약간의 무게도 참 좋아..
넘, 가볍지도 넘, 무겁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가 자꾸 자꾸 들었다 놓았다 하게 만들거든..


여기에 커피도 마시고, 보리차도 마시고, 심지어 쥬스도 따라 마셔!
녀석에게 쉴틈을 않주고 부려먹어.
다른컵은 죄다 물기가 없을정도로 뽀송뽀쏭하니 말려놓고,
이 녀석만 바쁘께 씻어가면서 부려먹어..

아이들 콘후레이크도 여기다 태워주곤 하는데,
컴퓨터며, 책을 읽으면서도 들고 먹기 편해서 좋아..

"엄마, 이기<이것이> 대접이가? 컵이가?"
첨엔 아이들도 어정쩡한 컵의 크기에 왈가왈부하더니, 인젠 그 컵에 익숙해져있어..

나도,
이 눔 같았음 좋겠다.
빛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단 한사람이라도 안식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다 받아안고, 감싸안고 내속에다 품어주기도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람..

힘들때
지칠때
즐거울때
외로울때
언제나 불러다놓고
마주보거나, 만져보거나, 퍼부어대거나,
....할 수있는 그런 넉넉한 품을 가진 사람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