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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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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BY 쟈스민 2002-08-29

멀리 내다본 하늘은 어느새 가을을 하나 가득 담고 있다.
곱고 흰 구름 사이 사이로 언뜻 언뜻 가을이 스쳐 지난다.

남편과 나란히 차를 타고 가는 아침출근길 라디오에선
강남의 칠십평대 아파트값이 이십억이라는 둥 ...
VIP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한달 사용한도가 1억이며,
현금서비스를3,000만원이나 받을 수가 있다는 둥 ...
온통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만 가득하기에
약간은 화가 난듯 채널을 돌린다.

어제밤 늦은 귀가를 한 그는
최근에 또 다시 얼마간의 자금이 필요한 것인지
아내에게 드러 내놓고 말도 하지 못한채
그 모든 의미가 내재된 한숨만을 내어 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던 나는
괜히 화가 치민다.

크던 작던 사업을 하는 남편을 둔 아내는
그럴때 사업자금을 척척 융통해낼수 있을 만큼의 탁월한 경제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생각만큼 그렇게 여유롭지 않은 지금의 생활이 새삼 돌아봐진다.

나는 아주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좀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면 안될까 하는
다분히 엉뚱한 생각을 ...

돈이 모인 곳은 너무 돈이 꼬여서 문제를 만들고 ...
귀한 곳은 너무 귀하여서 사람답게 살 수 없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러면 노력하고 살 이유가 없다고 누군가는 말할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본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남편이 그렇게 위축되어질 때면 곁에 있는 나는
그저 그 모든 것이 나의 씀씀이가 헤픈탓일지도 모른다는
나름대로의 반성을 해 보게 된다.

분에 넘치게 화려하게 사는 거 마음 편치 않아 하고,
그렇다고 애써 감정을 속여가면서까지 궁색하게 살고 싶지도 않아
갈등하던 내 모습이
지나간 시간속의 나였었지...

어려울 때마다 척척 도울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지 않으면서도
나는 그럴때마다 좀더 강인한 정신력으로 스스로 헤쳐 갈수 있어야 한다며
모질게 인내하는 시간을 그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참으로 인정머리 없고, 무관심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그 자신에게 도움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그 편을 택한 적이 많았다.

지나간 삶이 그러하듯 앞으로의 삶도 늘 그만 그만한 크기의
자잘한 고민들을 털어버릴수가 없는게 우리네 삶이려니 ...
나는 애써 조금은 여유롭게 마음을 먹어 본다.

머지 않은 시간에
아내인 나는 남편의 고민을 해결해줄 해결사 노릇을
이번에도 또 해야만 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그래야만 힘든 세상을 잘 살아낼수가 있을 것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오후나절에
성급한 나는 넓고 푸른 하늘에라도 나의 마음을
털어내 버리고 싶었다.
쌓아 두고 살기엔 너무 가슴이 아프기에...

내가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지금의 삶이
살아야 할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힘든 시간의 터널을 건너게 해 줄 것임을 나는 믿고 싶다.

지난봄 키우다 시들해진 질박한 화분에다
하나가득 국화꽃 향기로 희망을 피워볼수도 있는 그런 가을이
이렇게 맑은 오후엔 더 많이 기다려진다.

하나 둘 모아지는 그녀의 집에도
넉넉한 가을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시간이 언젠가는 찾아 들겠지 ...

그러면 우린 그렇게 사랑으로 일구어진 보금자리에서
나즈막히 이야기 나눌수 있을 테지...

가끔씩 들려오는 먼 나라의 이야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오고 있을 꺼라는 믿음으로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