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성 포유 지하철 족의 꿈
이윽고 도시의 거리엔 어두움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 합니다. 침묵
하는 티탄과도 같이 우뚝한 건물들은, 그 내부의 생존자들 만큼이
나 파리한 불빛을 비틀 비틀 뉘엿한 노을 뒤로 내려 놓습니다. 개
가 짖지 않는, 새가 울지 않는, 저녁연기가 오르지 않는 정적의 도
시에 밤이 옵니다. 오로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도시
입니다. 그 외엔 어떤한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인위적 무생물의 도시는 텅빈 진공의 공간으로 남습니다. 낡고 징
징거리는 네온등 아래, 그저 용감하고 순진한 취객과 노련한 호객
꾼들만이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고, 아름다운 세상의 한가운데를 열
망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또한 이곳을 서식지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또 다른 배금주의는 이곳 도시의 한공간에서 새로운 승리
를 맞습니다. 너무나 값어치 있으므로 아무도 이곳을 서식지나 번
식지로 삼지 않습니다. 그저 신성한 일터로써 잠시 분포하다가, 자
투리시간에 따른 근거리 법칙으로 이곳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이곳
에다가 놓고 갈 뿐입니다. 그렇게 깔끔하게 비어버린 도시의 밤입
니다. 몇가지 오물과 몇가지 사념과, 몇가지 불안만이 골목길을 농
도 짙은 잿빛 바람과 함께 배회합니다. 취객들은 때로 하루의 도시
살이에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결국 자신의 속마저도 다소곳이 꺼
내놓고 맙니다. 두터운 화장의 아름다움을 바른 여인들이 잠시 미
소를 던지고, 왜 웃는지 자신들도 알지 못하므로 우리도 덩달아 함
께 그것에 잠시 매혹되지만, 쇼케이스의 불빛이 꺼지면 양성 주광
성의 도시인들은 더 이상 도시에서 배회하지 못합니다. 네온과 플
라스틱 머니의 이곳에서 새벽은 늘 darkslateblue 로 밝아오고, 도
시에서 맞는 이른 아침은, 틀림없이 설명하기 복잡한 부끄러운 이
유들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돌아가는 서식지의 밤은 무표정의 그늘진 회귀성 도시인들
을 포근하게 안아주었으면 합니다. 오늘을 끄떡없이 존재하였으므
로, 자랑스럽게 버티며 살아 내었으므로, 상사의 잔소리를 견디었
으므로, 만기도래한 어음을 구렁이 알 같은 아파트를 잡혀 막아 내
었으므로, 아니 아무리 나쁘게 어림짐작을 하더라도, 적어도 내일
은 또 다른 새로운 날이므로 끈적한 밤을 가슴 서늘한 맥주 한잔에
식힐 수 있는 酒냉식 내연기관이 되어, 뒤척이는 잠자리나마 새우
가 되는 꿈은 꾸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
는 지나간 과거가 되고, 치매에 걸린 식물성 정물이 되고, 검은 리
본으로 치장한 화석이 되고 말 것을 너희가 이미 알고 있는 때문입
니다.
수 많은 기획서와, 밤을 잊은 프리젠테이션과, 일정 계획표와 제
12차 개발 회의를 거치면 틀림없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낼 것 같이
끓어 오르던 이 도시의 8차선 도로는 결국 새로운 교통사고의 희생
자들을 양산해 내고, 대량의 실업자를 생산해 내고, 저런~ 도둑놈!
들이 지면을 장식하게 하고, 몇몇 장래 촉망되는 젊은 두뇌들을 너
무 빨리 질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헌문지가 되어버린 찢겨진 종이
쪽들이 고독한 솔로 댄스를 추는 이곳의 처연한 Jazz는 질척거리는
발 걸음의 신데렐로와 신데렐라들에게 질박한 리듬을 들려 줍니다.
풋과일처럼 미리 조금씩 깍아 먹어, 이제는 늘 바닥이 보일듯한 우
리의 꿈과, 하루 마다 구조조정을 하여 그저 오늘 같은 내일만을
바라는 우리의 야망은, 이젠 손을 떠나 잡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
것은 둘째 치더라도, 언제 마음껏 사랑하려 하나요? 언제 우리 인
생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아 보려 하나요? 언제 우리가 그렇게
해보구 싶은 몇 일 죽음보다 깊은 잠은 언제 실시! 해보려 하나요?
접촉사고를 낸 불운한 자동차의 유리 잔해가 검은 길바닥을 은하수
처럼 반짝이며 물을 들인 골목어귀를 천천히 지납니다. 길을 잃은
50명의 미녀들이 항시대기! 하고 있음을 알리는 그 노란색 입간판
아래 길고 긴, 때로 영원같은 계단을 또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지
납니다. 마침내 이루어 버린 회귀성 포유 지하철 족의 꿈을 꾸는
우리는, 무리 짓고 떼를 지어 서식지를 향한 출렁이는 여행을 시작
합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검은 유리창에 비추인, 눈자위 푸르스름
한 무감각을 이마에 새기고 창백하게 허공을 떠도는 얼굴을 발견하
더라도 별루 감흥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제법 많은 소망들이 허
물어진 것을 압니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급여의 숫자와, 개방적이
고 자유스러운 카드 명세서로 또 하나의 깊은 금이 가슴에서 이마
로 주욱 놓여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만간 상처를 돌보아야만 합니다. 중요한 업무
때문에 방치하였던 우리의 피나눔이들을 돌아 보아야 하고, 돈 때
문에 이별을 결심 하려 하는, 늘 불안을 품고 견뎌내는, 한때 세상
을 다 가진듯한 기쁨을 주었던 가여운 연인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늘 뒷전에 남겨진 우리들의 우울한 사랑을 보듬어야 하고, 늘어가
는 주량의 이유를, 그러면서도 늘 뻔뻔하게 깊어져만 가는 고독을
다시 한번 사유하여야 합니다. 언제든 수화기를 달칵! 내려 놓을
때마다, 무빌폰의 액정 램프가 꺼질 때마다, 우리의 곁을 유령의
얼굴로 떠도는 외로움이, 잘못된 행성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흔
한 이유 따위는 이제 내려두고 길을 떠나야 할 때입니다.
너무 늦지 않은, 바로 오늘 영문을 모르는 그녀에게 정중한 사과와
부드러운 키스를 전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우리 생의 또 다른 당신
의 한쪽 얼굴인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라는 꼬리표를 달
고 사는, 모가 떨어지고 귀가 둥글어지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젠
돌아봄으로 진정 귀중한 것을 우리의 시간에 절실히 초대 해야만
할,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입니다.
오늘 퇴근길에서 본 풍광은 너무나 피로하고 지친 것들이어서 나는
우울이 번지고 말았습니다. 아직 맥주가 조금 남았고, 내가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아직은 절대 고독의 한 가운데
입니다. 그리고 점점 그런 고독이 편안해지고 있답니다. 이렇게
익숙해 지기 시작하면 한평의 땅속도 제법 견딜만 할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세그루의 소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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