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다급하게 울렸다.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마~악 들어오는 참이었다.
발악을 하듯이 울리는 핸드폰은 이미 한번의 지침을 호소하고 있었다.
핸드폰의 플립을 열었다.
고등학교 동기녀석 진이었다.
알럽스쿨이란 동창찾기 싸이트에서 후배녀석한테 메일을 받은 이후로
심심찮게 연락들이 오고 있었다.
"전화 좀 해라..넌 손가락에 깁스했니??"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들어가버린 녀석이라
내 결혼식에도 오지 못했다.
한국으로 귀국하자 마자 나를 찾았다하니...
그래..15년만이구나...
또 형식적인 만남을 약속하고 이 녀석보다 더 오랫동안 보지못했던 녀석의 근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나 준이야..잘있었어??..연락처 석이에게 알았어..
애들 많이 컷겠다.."
18년만에 한국에 들어와서 나한테 첨으로 전화한다는 준이녀석은
18년의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어 버렸다.
준이는 작년에 늦장가를 갔다.그 날이 마침 진이녀석의 둘째 출산 담날이었다.지금은 깨가 얼마나 쏟아지는지 연락도 뜸하다고 진이녀석 투덜거림이 대단했다.
알럽스쿨에 들어와 메모확인좀 하고 살라는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나는 전화기플립을 닫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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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참으로 위험한 치료약이다.
평생 잊지못해 가슴아플 기억도 시간이란 약은 서서히 그 고통을
줄여주고 눈물도 마르게 한다.
하지만...
잊지 않고 싶은 기억 속의 사람도 있다.
내 한쪽을 모두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람...
오랜 친구의 전화로 인해 어제 일인양 불현듯 생각나는 기억 저편의 아득한 내 사랑...
그리고 내 맘을 온통 흔들었던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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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장단을 맞추어 나풀거리는 빨래...
언뜻 언뜻 보이는 구름뒤의 햇빛...
더욱 짙어진 초록의 몸짓...
그러나...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아련함으로
잿빛을 닮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