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한 할머니가 있었다.
병원에서 봉사하면서 무의탁 노인들이 입원하시면
말벗도 해 드리고 보호자 역활을 하고 있다.
89세나 되신 할머니인데 양로원에서 오신 할머니다.
모습은 고생도 안하신 할머니같이 정말 고우셨다.
오전에 한참을 잠만 주무시더니
눈을 뜨며 뭐라고 중얼거리신다.
첨엔 치매노인인줄 알았다.
"할머니 뭐라구요?" 하고 귀를 가까이 대니
"딸이 보고싶어. 딸이 보고싶어...."
"하나님 곁으로 가기전에 딸을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
눈물이 나왔다.
가여운 할머니.....
할머니 손을 잡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다.
할머니는 그 연세에도 얼마나 총명하시고 기억력이 좋으신지
놀랄 정도였다.
큰아들은 아마도 미국에 있거나 죽었을거라고 하신다.
며느리가 사업을 하다 어찌어찌해서 차압을 당하고,
미국에 공부하러간 손녀딸이 있는데
아마도 큰아들 식구가 다 미국에 갔거니 하신다.
작은 아들은 오래전에 죽어서 혼자된 며느리하고도 살 수 없으니
딸의 이끌림으로 나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딸들도 사는 형편이 안되었는지,
할머니 당신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하시고
어느 목사님의 발견으로 해서 지금 계신 양로원에
들어오셨다고 한다.
50대에 할아버지를 여의셨는데,
그때까지는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고 하신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바느질을 잘하니 바느질을 해서 돈을 벌었어도 되었을것을....
장사라도 해서 돈을 벌었으면 이리 안되었을것을......."
하고 후회를 하신다.
참 말씀도 얌전하게 하시는 할머니는 얼굴도 무척
이쁜 얼굴이시다.
말문이 트이니까 손주 손녀들 얘기며 딸 아들 얘기며
줄줄이 말씀을 하시는데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 말씀속에 다 들어있었다.
전화번호가 있지만 전화를 하면 그런사람이 없다고 한댄다.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할머니의 자식들은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
난 아직도 젊은 세대이지만 내게도 친정에 86세나 되신
할머니와 부모님이 계시다.
어려서부터 어른들과 함께 살아서 그런지
노인에게는 자연스럽게 공경하는 것을 배웠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편때문에 못모신다 해도
자주 찾아뵙기나 해야하지 않을까?
너무나 외로워 하는 할머니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정도가 좋아지셔서 퇴원을 하셔야 하는데
양로원에 가봤자 무료하기만 하시니까
또 여기 저기 아프다고 엄살을 더하신다.
식사도 제대로 안하시는 할머니....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해도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딸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할머니......
딸소식을 수소문해드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딸 얼굴을 보려면 할머니도 밥많이 드시고
기운차려야 한다고 약속을 받고
그 날은 집으로 돌아왔다.
자꾸 친정에 계시는 내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 돌아가신지가 15년이 다 되었건만 내 기억엔 생생하다.
할아버지 장례치르고 다시 직장에 돌아와 생활하다
쉬는날 집에 다니러 간적이 있었다.
혼자 되신 할머니는 갑자기 폭삭 늙어버리셨다.
어쩜 그렇게 빨리 늙으실까 싶을 정도로 놀라게 늙으셨었다.
그래도 우리 할머니는 같은 동네에 아들 삼형제가 함께 살고,
딸인 우리 고모들이나 손주인 우리들도 자주 찾아가니
외롭진 않으시지만,
홀로 이렇게 버려진 노인들을 보면 맘이 너무 아프다.
앞날은 모르는 것이지만 나도 늙는 것을 생각하면
내 부모에게 어찌 이럴 수 있을가 싶다.
할머니가 계신 그 양로원엔 치매노인도 많다고 하지만
이 할머니는 아주 맑으셨다.
어쩌면 차라리 치매에 걸려서 아무것도 모르는게 더
맘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는 내 맘이 아팠다.
할머니에게 가장 반가운 선물은 아마도 할머니의
딸들이 찾아와 주는 것일텐데,
무심한 사람들같으니.....
연세도 많으셔서 오래 사실것 같지도 않다.
가여운 할머니....
마음이 무겁다.
몇달 뒤 할머니가 계신 양로원에 의료봉사팀이
간다기에 나도 합류해서 갔었다.
할머닌 그 사이 백내장 수술을 하셔서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계셨다.
날 잊지 않고 반가워 하시는 할머니...
내가 당신 딸을 닮았다고 하시며
또 오라고 손을 놓지 않으시는 할머니...
용돈을 조금 쥐어 드리니 한사코 사양하셔서
"할머니, 교회 가실때 헌금도 하시구요,
저를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해 주세요..."
하니까 그럼 그럴께 하시며 받으신다.
요즘 친정의 내 할머니께서도 시력도 흐려지시고
청력도 흐려지시고, 가끔 약간의 치매 증상까지
보이셔서 가슴이 아프다.
TV드라마에서 수경이의 할머니가 치매로 오락가락
하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나도 언젠간 늙어간다.
부모없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나왔을까?
내가 내 자식에게 하는 반만큼,
아니 반의 반만큼, 반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부모에게 한다면 그것으로도 효가 될텐데...
전화를 해야겠다.
할머니 목소리도 듣고, 엄마 목소리도 듣고...
그런데 벌써 눈물이 나려고 한다.
얼마전에 친정에 전화했을 때,
"보고싶어 혜경아~~ 언제 올거야?
빨리와~~"
많이 약해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끊은 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추운 겨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겨주시며 언 손을 화롯불 가까이 끌어당겨
녹여 주시고,
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손으로 김치를 쩌억 쩌억 찢어 밥숟갈에
얹어 주시던 우리 할머니...
털신을 따뜻하게 해 두었다가,
새벽 등교길에 내게 신겨서 버스 타는 곳까지(제법 멀었다)
함께 걸어 오셔서 차 오기를 기다렸다가,
차가 오면 다시 신발을 갈아신겨 주시고
배웅을 해 주시던 따뜻한 내 할머니...
엄마는 늘 들일로 바쁘셔서 어렸을땐
할머니가 많이 챙겨주셨던것 같다.
이젠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내 엄마도 많이 늙으셔서 할머니가 되셨다.
언제나 고생만 하시는 엄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 엄마라는 두 글자...
효도에는 때가 따로 없는것 같다.
마음으로 먼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