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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8) -- 미국 회사


BY ps 2002-08-23


L.A.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시간 정도 가면 있는 리버사이드(Riverside)는
오렌지를 기르기에 알맞은 기후라 곳곳에 오렌지 과수원이 있어서
봄 (4, 5월)만 되면 온 동네가 오렌지 꽃향기로 뒤덮혀
이곳이 바로 '에덴 동산'이 아닌가? 라는 느낌을 주곤했다.

조그만 도시(엘에이의 약 1/10 정도)답게, 인심도 후하고
사람들도 친절하여, 순이와 나는 살맛이 났고, 이 좋은 곳에서
살게 되려고 취직하기위해 '그 고생'을 했구나 싶었다.
진짜 '신혼 생활'이라 어딜 갔어도 비슷한 느낌이었겠지만.

직장의 동료들도 대학을 막 졸업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500명 가량 되는 종업원중 다른 부서에 비서로 있는 필리핀 출신의
아줌마와 공장에 있는 서너명의 베트남 출신 직공을 빼면,
내가 유일한 동양인이었을 정도로 동양사람이 적을 때라,
나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을 느끼기도 했고...

회사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처음 놀란 점은 철저한 '시간지키기' 였다.
비록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애사심'이 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 일찍 가서, 조금 늦게 나오곤 했는데,
정식 근무시간이 끝나는 오후 3시 반만 되면 (7시 시작, 점심 30분)
사무실이 텅~비는 것이었다. 공장의 불루칼라 직원들은 3시 25분만 되면,
곳곳에 있는 퇴근시간을 찍어주는 기계 앞에서 30-40명씩 줄을 지어 서있는
놀라운(?) 광경도 연출하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알고보니 그게 바로 미국식 '실용주의'인듯 싶었다.
제 시간에 와서 8시간 열심히 일하고, 그 후에는 각자 자신의 개인생활로 돌아가
그것에 충실하고.....

사무실의 분위기도 무척 자유로웠다.
바로 위의 상사가 영국 출신인 Bill Brown이었는데,
내가 처음에 'Mr. Brown'이라고 부르니까, 웃으면서
'자기 아버지가 Mr. Brown이고 자기는 Bill이니까, 앞으론 Bill이라고
불러라!'했다. 나보다 적어도 20살 이상 나이가 많았는데...
몇달 후에야, 처음 만나는 사람이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야 'Mr.'라는
호칭을 붙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서야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그냥 이름(first name)을 부르는 게 익숙해졌다.

일주일에 두번 있던 회의에서도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맡은 일의 진척상황을 보고할 때나 문제점에 관해 토론할 때도,
자기만의 생각, 하고 싶은 말...얼마던지 표현하였고,
보스의 하는 일은, 너무 격해지는 토론을 자제시키고, 늦어지는 일에 대해
약간의 잔소리, 그리고 회의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 후에 자질이 모자라는 보스를 만나서 그렇지 않은 사람도 꽤 있다는 걸
알았지만)

학교에서 열심히 배운 것이 직장 일에 직접적으로 응용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약간의 실망은 있었으나,
새로운 일을 배우고, 또 하는 일에 대해 금전적으로 큰(?) 보상을
받는 재미에, 나의 첫 직장생활은 만족스럽게 시작됐다.

그리고 '영어의 생활화' 덕택에 나의 회화솜씨가 무럭무럭 커가는 재미도
쏠쏠했고, 이제는 정식으로 미국사회의 일원이라는 뿌듯함이 느껴지던
행복한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