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장정식"씨를 아냐구....
얼마만에 들어본 아버지 성함인가.....
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본건,
큰 딸 이현이를 임신한 상태였으니,
벌써 6년이 흘렀다.
울산에서 신접살림을 차린지 5개월만에
전주 공장으로 발령 떨어진 남편을 따라
이사짐을 꾸린 날이였다.
원래 마른분인데다가, 바바리코트를 걸친 모습은
더 말라 보였다.
난 덥썩 안기지도 못한채, 오히려
아버지가 나를 찾아온게 두려웠다.
아버지를 외면하고 올린 결혼식도 용납 못하고,
사위를 사위라 부르지도 않으신채,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남편은
작은 횟집으로 갔다.
서먹한 시간은 왜그리 길든지......
어떻게 설명한지도 모르게
긴 얘기 끝에 아버지를 터미널에서 태워 보내고
연락 하겠노라 하고선, 연락 두절한지
벌써 6년이다.
속모르는 남들은 독한 년이라 할 것이다.
아니, 사실 나 조차도 나 자신을
설명 못할 부분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연락 끊고 살거라 생각했던건
큰 오산이였다.
동사무소 직원 말로는
아버지가 생활 보호 대상자를 신청했단다.
그런데, 호적상 내가 딸이기에
부양할 책임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대상자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편을 조사해보고,
어찌 방법이 생길수 도 있다는 거다.
순간, 전화 받으며 현기증을 느꼈다.
참, 질기기도 한 인연이구나.
난 장씨라는 걸 여태 잊고 있었나 부다.
오빠의 죽음. 부모의 이혼. 눈물바다의 결혼식.
내가 더 겪어야 할게 또 남았단 말인가.
속모르는 남들은 왜 아버지랑 연락을 안하냐구
뭐라 할것이다.
아버지!
글쎄....살면서 내가 얼마나 아버지라는 존재를
느끼고 살았는지 난 기억이 없다.
중학교 들어가기전,
수업 마치고 하교하면, 친구랑 놀기는 커녕,
알파벳.구구단이 있는 받침대를 들고
안방으로 건너가 무릎을 꿇은채,
2-3시간을 억지 공부 했던 기억,
성적 내려갔다고,
팬티 바람에 종아리 맞은 기억.
많지도 않은 용돈을 받으면서도,
미술시간 준비물 사야 한다는데,
정작 돈주는 엄마는 말이 없는데,
소리 버럭 지르며 손지검 하는 아버지
아니였든가......
무능력하면서도 야학 교사였던 아버지.
돈벌이는 못해도, 너무 똑똑해, 엄격했던 아버지.
난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어,
가출을 2번이나 했었다.
어쩜, 억압적인 아버지의 환경속에서
난 벗어 나고 싶어 이른 결혼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디 다른 곳에서 내 공간을 갖고 싶어서.......
남편은 그런 속사정을 모르다가
아버지가 불쑥 찾아 온 이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도 치 떨리게 싫던 아버지.
엄마는 나를 시집 보낸후
이혼 하시고, 지금 재혼 하신 상태다.
엄마는 내가 아버지를 찾아 가지 않는것에 대해
한마디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어쩜, 엄마가 날 좀 이해 해주는건지....
아님, 그냥 내가 어떻게 하든 나에게 맡기는건지.
그건 아직 나도 모른다.
난 나 스스로가 내가 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어디에 사시는 거 뻔히 알면서도.....
내가 사는 집(시댁) 그리고, 시댁식구들에게
혹시 피해가 오지 않을까..
아님, 아버지로 하여금 나의 흠 하나가 잡히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앞서서 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내가 겪은만큼의 고통을 아버지도
그 만큼의 외로움.고통을 느껴야 한다고 ......
쓰리고 지난 과거에 왜 집착 하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누구보다 피해자다.
아버지를 통해, 둘도 없는 형제도 잃어야 했고,
무능력한 아버지 덕에
엄마의 따뜻한 손길보다
아버지의 독재적인 환경에서 자란 탓에......
그런 아버지가 힘들단다.
아들을 병상에서 떠나보내며,
잃은 재산 이후, 복귀 하지 못한 생활고.
열심히만 있다면, 충분히 할수 있는걸
그걸 하나 해결 못한것에 대한 분노.
난 아직도 그런 앙금들이 남아 있다.
가난했기에 힘들었다고 아버지를 미워 하는것도
아닐진데, 난 여하튼....아버지의 대한 그리움이
온통 먹빛이다.
시집간 딸이 무엇을 해줄것인가?
나 살기 바쁜 이 생활에서.....
떵떵 거리고, 잘 살아
한 밑천 떼 줄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맏며느리라 시댁에 들어가
사는 입장인데.......
어쩔수 없다.
현실인것을.......
이현이 대건이 손잡고
김해를 한번 가고는 싶지만,
난 아직도 그 곳을 바라만 보고 있다.
그냥 그렇게.......
눈물 흘릴 만큼의 그리움이 눈꼽만큼도 없다.
다만,
자식이기에,
내가 장씨이기에
그냥 핏줄이라 작은 연민일 뿐......
참, 답답한 인생이다.
나도......아버지도.....
왜 우린 이런 부녀가 되었을까.
충분히 웃고 감싸 안을 수 있을것을........
어느새, 동사무소 직원을 통한
아버지의 집 전화번호.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말없이 전화번호부 비닐깔피에 끼운채,
난 서재를 나와버린다.
딸로서 아무것도 해줄수 없음에
미안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팔자려니........
우린 이렇게 살아야 하나부다
라는 어처구니 없는 한숨만 나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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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에세이 방에 와보네요.
제 홈에 베어울프 님이 다녀가신걸 보고,
근래 저의 심정을 일기 삼아 쓰봅니다.
다녀가신
베어울프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