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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잊지 못할 하얀 쌀밥


BY 1004bluesky1 2001-06-01

세상에서 가장 잊지 못할 하얀 쌀밥

그것이 언제였던가 그러니까 지금부터 만 사 년 전의 일이다.

첫째 딸 아름이가 네 살이고 지금 다섯 살인 둘째 딸이 뱃속에서 나올 날만 기다리고 있던 가을.

그 해 따라 때 이른 추석이 9월 중순에 끼어 있었다.

출산예정일이 바로 추석과 근접한 날이라

은근히 더운 여름에 찾아온 추석에 제대로 차례상은 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느긋한 일요일의 단잠을 깨우는 시외전화 한 통으로

우리 가족들은 앞 뒤 가리고 정신차려볼 여지도 없이 고향 신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내려가는 동안 연신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편 뒤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안고 복받치는 슬픔과 처음 겪는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나.

그렇게 7년을 아버님의 발목을 붙잡고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던 관절염은 아버님의 심장을 끓어 안고 가버렸다.

아이를 가진 몸이라는 이유로 마지막 가시는 모습도 못보고 그렇게 허망하게 작별을 고했다.

병원 밥은 목에 걸려서 안 넘어간다고 집으로 가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하시던 아버님의 소망대로

30년을 사시던 그 집에서 눈을 감으셨다. 편안한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셨다.

"아이구, 아이구"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곡소리.

그렇게 살아 생전에 자식 고생 시킨다고 당신보다 먼저 가시라고 제발 먼저 가시라고 애원을 하시던

어머님의 곡소리가 목에 걸려 차마 입에 음식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뱃속에 있는 아일 생각해야제. 산모는 너무 울어서도 안되고 너무 속을 비워도 안 되는 기다.

어서 많이 먹거라. 너거 아버님도 그러길 바래실 기다. 그러니께 너 해산하기 전에 돌아가셨제.

장래에도 못 올까봐. 암 그렇고 말고"

어머님의 권유로 먹었던 쌀밥은 모래인지 옥수수 알갱이인지 자꾸만 목에 걸려 넘어가기를 거부했었다.

당신은 곡기를 끊다시피 하시면서도 뱃속의 손주 걱정에 몇 번을 챙기시던 어머님.

태어나서 그렇게 맛없는 밥은 아마도 처음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건 정말 밥 같지도 않은 밥이었다.

밥에도 서열이 있다면 단연 꼴찌이기를 자처하는 그런 밥이었으리

슬픔을 넘어서 찾아오는 시장끼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보내면서 하루라도 굶고는 못 견디는 남아있는 자의 현실.

내 슬픔의 강도가 너무 약한 것일까?

난 돌아가신 아버님 영정 앞에서 죄송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모가 지나고 상복을 벗고 그 동안에 쌓인 피로가 풀릴 겨를도 없이 한 발 한 발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추석은 친정에서 지내기로 계획을 하고 시골에 내려간 남편을 기다렸다.

아이도 아빠를 기다린 걸까?

남편이 돌아오고 진통은 시작되었고 첫 아이보다는 빨리 둘째를 출산하였다.

첫 애가 딸이라 이번에는 아들이기를 무척이나 기대했었다.

남편은 상관없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리고 간호원의 한 마디

"축하합니다. 3.02 킬로그램. 딸입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맏며느리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감과 일과 잡 사이를 오가며 동동거리며

첫 애를 키웠던 기억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가며 또다시 아이를 나아야할지도 모른다는 절대 꾸고 싶지 않은 악몽

미역국을 가져오는 간호조무사 앞에서 부끄럼도 잊고 너무도 서러움에 복받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게 밥은 숨통을 틔어주고 허기를 삭여주는 양식이 아니라 숨통을 졸라매는 흉기와도 같았다.

하루 밤을 병원에서 보내고 큰애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애는 나만이 보호해야 하는 천덕꾸러기야 하는 단정으로 내겐 둘째가 더 소중하게 와 닿았다.

"엄마! 할머니 오셨어."

어머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가장 죄송스러웠다.

딸 낳은 죄인이라고 했던가?

한 번도 내색하신 적도 없는 어머님이었는데도 난 스스로 죄인의 자리에 섰다.

"야 야, 애썼제. 서운케 생각 말거라. 다음에 또 나으면 안돼나."

어머남은 아이와 내 자리를 봐주시고는 자그마한 상위에 하얀 쌀밥과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미역국에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수저를 올리고 들어오셨다.

"그저 삼신 할머님예, 우리 며느리 하고 손주 하고 아무 탈 없이 몸조리 잘 하도록 붙들어 주이세이.

미련한 중생이 뭐를 알겠십니꺼. 그저 알아서 잘 보살피 주이세이."

밥상을 놓고 두 손을 비비는 어머님의 뒤에서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퍼떡와서 뜨거운 국하고 밥 한 그릇 먹거라.

내 특별히 내가 새로 추수한 햅쌀을 가지고 안 왔나"

저 하얀 쌀밥을 아들, 며느리 먹이려고 칠순의 허연 백발을 걷어올리시며

똑바로 펴지도 못하시는 허리를 몇 번이나 쥐고 쉬셨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와중에 먹은 그 하얀 쌀밥은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밥맛이었다.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큰애는 할머니 밥 더 주세요를 연발하였고

남편은 얼마 만에 먹어보는 밥 같은 밥이냐며 허겁지겁 먹어댔다.

그리고 내 가슴엔 아직도 그 밥맛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숙연히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다행히도 우리는 아직도 그 고마운 쌀밥을 먹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다달이 보내주시는 흰쌀은 그대로 어머님의 정성이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밥과 가장 맛있는 밥을 모두 선사하신 어머님.

오늘도 저녁을 차리며 어머님의 고귀한 사랑에 또 한 번 고개를 숙인다.

'보내주신 정성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머님,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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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네요.

글쓰는 사람은 남ㅎ이 읽어주면 무조건 기분이 좋겠지요.

그래서 무척 행복합니다.

어제 저녁 농협에서 올린 대회를 알고 마감시간에 맞추어 부랴부랴 쓴 글이라 부끄럽습니다.

동감하시는 분들의 의견 올려주시면 배배로 행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