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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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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13


BY 녹차향기 2000-11-17

난꽃이 피면 아주 그윽한 향내가 납니다.
그 향은 어찌보면 이 세상의 내음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저희집 베란다에 몇개 화분이 놓여있는데, 난꽃이 핀 것을
은은한 향내가 나고서야 알았습니다.
난꽃이 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할 정도로, 난꽃을 보기 참 힘들다고 하던데 그 어여쁜 난꽃을 아주 배부르게 쳐다보았지요.그 난꽃이 어제,오늘은 무거운 고개를 숙이고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어요..

감기에 몸이 불편하신 시어머님은 드디어는 학원을 결석하셨어요.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러 가셨는데, 정말 불편하셨던 모양이예요. 오전 일찍 병원에 다시 다녀오시곤 계속 자리에만 누워계셨는데 잠시 방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들어갔더니 또 앉은뱅이 책상을 끌어안고 글씨를 쓰시고 계시지 않겠어요?

"어머님, 편찮으실 땐 푹 쉬는게 약이예요. 쉬시지 않고서..."
"가만 누워있으려니 남들만 열심히 공부하는 거 같구, 또 심심하길래...."
하시며 계속 글씨를 쓰셨어요.
대입시 수험생, 사법고시생이라구 저희 부부가 맨날 놀려드리는데도,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아마 어렸을 적 배움의 기회가 저렇게 있었더라면 지금은 또 다른 인생을 살고 계시겠죠..

오후엔 동네아줌마들과 차를 한잔 했어요.
거기서 들은 얘긴데 며칠전 친한 분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다가 어~어!! 하시더니 쓰러지셨는데 그길로 운명하시고 말았대요.
왜 남편들 퇴근하고 들어오면 그저 텔레비젼 뉴스나 스포츠 실컷보고, 신문이나 다시 뒤적이다가 잠자리에 들기마련이라 몇마디 말도 서로 주고받을 시간이 없는데, 그 일이 있기 며칠전에는 아이 진로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한 얘기들을 나누었었대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고 출근시킨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런 부음을 전해듣는다면 그런 청천벽력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전해주신 분 말씀이 항상 마지막일 듯이 살라고 하시더라구요.
자녀들에게나, 남편에게나, 혹은 시부모님에게나 마찬가지.

아주 어렸을 적, 5살이거나 6살때쯤 일이예요.
저희집은 마포구 공덕동에 살았는데, 아주 급한 경사의 계단을 한참 올라야지 저희집이 있었어요.
그당시엔 쓰레기를 모으는 시간이 따로 있어서 요란한 종소리가 나면 모두 사과궤짝같은 곳에 모아둔 쓰레기를 이고지고 내려가서 그 쓰레기차에 버렸었어요.
전 열이 펄펄 끓어 자리에 누워 앓고 있었는데, 엄마가 쓰레기를 버리러 그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시며
"은미야, 엄마가 쓰레기 버리고 얼른 올게... 아프지 말고 있어라..."
라고 말씀하셨지요.

아마 쓰레기 버리러 다녀오시는 사이에 제가 많이 아플까봐 걱정하셨던 모양이예요.
그 어린 나이에도 혹시 엄마가 그 무거운 연탄쓰레기를 이고 내려가시다가 잘못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러 크게 다치시면 어떡하나, 얼마나 무거우실까, 얼마나 힘드실까, 왜 우린 이렇게 꼭대기에 사는걸까....
하고 생각하다가 엉엉 울어버렸어요.

기다리는 시간은 왜 그리도 길고, 초조한지 엄마가 다시 집에 돌아오시는 발걸음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누워있었어요.
일어나 밖으로 나갈 기운은 더 없었고요..
얼마나 오래 울고 있었는지, 한참 후에 엄마가 돌아오시자
"은미야, 괜찮니?"
하고 물으셨지만 목에까지 울음이 꽉 차있는 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방문을 얼른 열어보신 엄마는
"어머, 그새 더 아팠나보네..."
하시며 이마에 손을 얹어주시고,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셨지만
엄마걱정에 눈물이 났었노라곤 말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때 했던 결심일거예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야겠다고...
맨날 너무너무 고생만 하시는 엄마한테 잘해드려야겠다고..
학교를 졸업하도록, 직장생활을 하도록 엄마 속 한번 상하게 해드린 적이 없는 저였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얼마나 엄마에게 근심,걱정을 끼쳐드렸는지 ......

내리사랑.
얼마나 좋은, 아름다운 사랑이예요?
자식들이 그 은혜에 십만분의 일, 백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아요?
내 곁에 있는 그 누군가와 이 생에서 헤어지는 그 순간이 있을 때 땅을 치며, 가슴을 뜯으며 후회하지 말아야지요.
제가 늘 남편에게 하는 말이예요.
"당신 이 담에 어머님 돌아가시고 안 계실 때 내가 왜 그렇게 맘아프게 해드렸나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요..."

후회하지 않고,
돌아서서 생각할 때 그때 그렇게 하길 참 잘했어 하는 뿌듯함이 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겠어요.
바람에 별빛이 흔들리는 거 보이세요?
저 별 빛이 우리눈에 들어오기 위해선 이미 수천년전 빛은 이미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잖아요...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고 있는,
또 아름다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매일 행복한 일만 가득 했으면 좋겠어요...

낼 아침은 영하권으로 떨어진다고 해요.
낮은 다시 따뜻해지지만 그래도 어디 11월의 햇살이 얼마나
따습겠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저희 시어머님 감기도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구요.
낮엔 압력솥에 배와 도라지를 넣어 배숙을 해드렸는데 아직까진 별 차도가 없으세요.

제 글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따뜻한 녹차를 같이 훌훌 마시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