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어떤 어르신의 추억 하나.
그 옛날, 서대문 형무소가 있었던 근처의 초가집에 살았던
그분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으셨다.
처음으로 아파트에 이사온 날 밤...
방 한가운데 댓자로 누워, 네 귀퉁이가 반듯한 아파트의
천장(天障)이 너무도 신기하여 기어이 보고 또 보고
하셨다는 말씀.
어린 시절 초가집에서 사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워, 나중
에는 반드시 네 귀퉁이가 반듯한 집에서 꼭 살아보리라
몇번이고 다짐했다는 어른이셨다.
요즘 우리 집 윗층에선 한창 집수리 공사가 진행중이다.
정작 공사는 12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데, 내가 사는 10층
에서도 바로 공사가 벌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만큼
꽤 요란한 소리가 자주 나고 있다.
반상회를 통해 다른 이웃 주민들로 부터 그 공사의 진척
상황을 들으니, 공사의 규모가 그야말로 놀랄 정도.
거의 다 헐어내고 새로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만큼 정말 대단한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 집의 공사 쓰레기가 나오는 걸 보니까
집을 다 뜯어냈는지 아파트의 기존 자재와 바닥 및 벽을
헐어낸 부산물들이 트럭으로 실려나갈 만큼이었다.
새로 이사오면서 집을 수리하고 오는 경우는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니긴 하지만, 이번 윗층처럼 아예 집을 개조(?)
하는 일은 드문 듯.
주민들은 반상회에서 하나같이 그 집의 무지막지한 공사에
반발을 하고, 도대체 이러다가 아파트가 아예 허물어지는
것은 아니냐며 걱정어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당장 소음때문에 며칠씩 조용한 낮시간을 방해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이해하는 편
이긴 하다.
이왕이면 좀 더 좋은 주거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것도 개인
의 지극히 사소한 욕구고 희망인데 그것을 누가 탓할 수야
있을까.
나는 그 집의 요란한 공사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저
아무렇지 않게 책을 보고 낮잠도 자고 인터넷도 하고...
모든 일상 생활을 그저 똑같이 한다.
그러다가 너무 유난스럽게 시끄러우면 (뭘 뚫어대던지 거의
집 무너지는 굉음이 나기도 한다.) 아예 모든 것을 접고
그냥 집을 나서도 본다.
일부러 은행 볼일을 만들어 나가고, 서점에도 가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유난히 생각나는 것은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어르신의 "네 귀퉁이가 반듯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씀.
아마도 이번에 이사오는 이는 처음으로 집을 장만하는 사람
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집에 대한 욕심을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맨 처음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감격을 잊지 않고 있다.
비록 부평의 작은 16평짜리 아파트에서 였지만, 나는 그
집의 작고 앙증맞은 모든 것들이 그저 감격스러웠을
뿐이었다.
특히나 전세집도 아닌 내집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집에 대한
애착으로 얼마나 쓸고 닦고 했었던가.
새집이라 아직 페인트 냄새도 다 가시지 않은 듯한 그
집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그 작은 베란다에서 혼자
종종거리며 노래도 불러보고....
집이 주는 편안함은 비단 그 규모와 호화로움에 있지 않다
는 것을 나는 안다.
과연 어떤 이웃이 새로 이사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예쁜 집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생활이 늘 행복과 기쁨
으로 가득차기를 한 이웃으로서 바래본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