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대학병원에 정기검진차 시아버님께서 다녀 가셨다.
아들, 며느리도 없는 집엔 아이들 둘만 있었는데
딸 아이는 제손으로 커피 한잔을 타드렸다고 한다.
아무리 조합을 해도 엄마가 타던 그 맛과 색깔이 나오질 않자
아이는 베시시 웃음을 흘려가며 할아버지 앞에 찻잔을 내려 놓았단다.
따뜻한 밥 한그릇 해드리지 못한 나로서는 못내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아버님께서 놓고 가신 보따리 속에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새로 수확한 옥수수가 들어 있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올망졸망한 모습으로 여린 껍질속에 수염을 잔뜩 매단채...
알알이 여문 사랑으로 우리에게 왔다.
언젠가 오줌소태가 걸린 나에게
어머니는 그 옥수수 수염이 효험 있다 하시며 삶아 주셨는데 ...
먹기 거북한 걸 억지로 참고 마시던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어릴적 기억에는
보통 옥수수를 삶으면 노오란 빛깔에 가지런한 알갱이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것은 자주빛이 감도는 검붉은 알멩이가 박힌 것이다.
맛도 맛이지만 삶을 때 나는 구수한 냄새는 채 익기도 전에 우리의 미각을 돋군다.
이름하여 찰옥수수라 하는 것인데
맛이 쫀득하여 앉은 자리에서 몇개는 거뜬히 먹어 재친다.
그러면서도 한편 살찌는 걱정을 하고 있는 난 참 어리석은 사람중의 하나인가보다.
연일 내리는 비속에서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바로 저만치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일테지 ...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은 하얀 이를 드러내 놓고
씨익 웃으며 저마다 옥수수 하모니카를 분다.
화음이 맞던 안 맞던 맛있게 불어대면 그만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어대는 동안
나는 토실토실한 감자의 옷을 벗긴다.
뽀얀 속살을 강판에 갈아 갖은 야채를 넣고 노릇하고 자작한 감자전을 부친다.
모처럼의 여행중 관광지에서
감자전이라고 내온 야채 한가락 들어있지 않은 말간 밀가루전을
아무것도 넣지 않은 진간장에 찍어 먹으면서도
이곳의 감자전은 이런가보다...그냥 무덤덤히 넘겼지만
뭔가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은 어째 느껴지질 않아서
잘 먹었다는 인사가 차마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큼지막하게 부쳐서 커다란 접시 가득 올려 놓으면서 ...
음... 이 정도는 되어야 감자전이라 할 수 있지 ...
나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휴일 오후를 즐긴다.
우리는 누구나 먹기 위하여 살고 있지는 않으나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하여는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부들의 일상은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이라 다소 지루해 보일때도 있지만
가끔씩 가족들을 위하여 준비해 보는 향수어린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모두를 포근하게 해주는 듯 하다.
가장 시골스러운 밥상을 대하여 적당한 포만감이 일 정도로 밥한그릇을 먹었을 때
"정말 잘 먹었습니다... "라는 인삿말이 절로 나옴을 느낀다.
어릴적 시골에서 먹던 음식이 지금껏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면
사람의 기억력이란 맛에 있어서도 참 유별난 것만 같다.
아이들과 함께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며
무조건적으로 받기만 하고 사는 지금의 내 삶이
너무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그동안 내가 받은 것들을
조금만이라도 돌려 드릴수 있는 그런 시간들로 채워가야 하리라 ...
채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들을 스케치 하듯 그려 본다.
열살 무렵이던가 혼자서 옥수수 밭엘 갔던 나는
옥수수가 절반쯤 담겨진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나머지 바구니를 하나 가득 채워 사각사각 바람이 이는 옥수수밭을 지나오던
눈이 큰 아이였지...
유년의 기억들로 오후 한나절 그리움에 젖어 본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시며 기특하다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허연 백발의 주름진 내 할머니의 얼굴이 옥수수 하모니카에 겹쳐져서
어른 어른 눈물로 아른거린다.
오래전의 시간여행이 나는 그저 꿈결 같기만 하다.